대한민국은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의 42개 종목 중 41개 종목에 대표팀을 출전시켰다. 유일하게 대표팀을 보내지 못한 종목이 바로 크리켓이었다. 대표팀을 구성할 수 없을 만큼 저변이 취약했던 탓이었다. 남자 대표팀의 경우 2012년 12월 대표선수들을 모집해 이제 정상궤도에 올랐다. 그러나 지난 3월 결성된 여자 대표팀은 사정이 다르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개막 50일을 앞두고 막판 담금질을 하고 있는 여자 대표팀의 사연을 들어봤다.
대학생 아들을 둔 47세의 주부 전순명. 그는 지난해 10월 인천대에서 여자 크리켓 선수를 모집한다는 플래카드를 봤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태극마크를 달고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수도 있다는 말에 구미가 더 당겼다. 뒤늦게 인천대 평생교육원 체육학과에서 학사 과정을 밟고 있던 그는 선뜻 응모했다.
크리켓의 ‘크’자도 몰랐던 전순명은 크리켓이 쉬워 보였다. 긴 빨랫방망이 같은 배트로 공을 치니 야구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보기와 달리 크리켓은 만만한 종목이 아니었다. 맨손으로 야구공보다 더 딱딱한 공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타박상 등 부상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미 크리켓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려 그만둘 수 없었다. 전순명은 “좋아서 시작한 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다”며 “남편도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내라며 적극적으로 밀어준다”고 말했다.
전순명은 지난 3월 중순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나이 때문에 떨어진 것 같아 실망이 컸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죠. 태극마크를 달진 못했지만 인천크리켓협회 소속 선수로서 대표선수들과 함께 계속 훈련했습니다.”
약 2개월 후 다시 기회가 왔다. 대표팀에 결원이 생긴 것. 커트라인에 걸려 탈락했던 그는 마침내 지난 6월 1일 국가대표로 선발돼 태극마크를 달았다.
전순명은 대표선수들의 어머니 역할도 하고 있다. 전수명은 “어린 선수들이 가끔 날 보고 농담 삼아 어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며 “선수들이 부상당했을 때 서로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전했다. 그녀는 선수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우리에겐 여자 크리켓이 어떤 것인지 국민들에게 알려줄 사명감이 있다. 다들 힘들겠지만 참고 조금 더 노력하자”고 다독인다고 했다.
대표팀엔 모두 15명의 선수가 있다.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주장인 오인영(25)은 대학에서 골프를 전공하다 크리켓을 하기 위해 휴학했다. 정아람(23)은 합기도 사범 출신이다. 허미진(37)은 소프트볼 국가대표 코치를 지냈고, 안나(27)는 소프트볼 국가대표 출신이다. 박진습(24)은 근대5종 선수였다.
운동 경력도, 나이대도 다른 이들은 한국 여자 크리켓의 ‘밀알’이 되기 위해 최근 2개월 동안 네팔 카트만두에서 강도 높은 전지훈련을 했다. 10여년 전 귀화한 파키스탄 출신의 나시르칸 감독은 각기 다른 운동을 한 선수들에게 기본기부터 하나씩 가르쳤다.
크리켓은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인천아시안게임 여자 크리켓 종목엔 강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10개국이 참여한다. 대표팀이 잡은 목표는 1승이다. 전순명에게 목표를 너무 낮게 잡은 것 아니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거죠. 하지만 미래는 밝습니다. 카트만두 현지 코치가 ‘한국이 몇 년 안에 아시아 강자로 떠오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남기(48) 인천크리켓협회 전무이사도 “한국 선수들은 체격조건이 뛰어나고 정신력도 강하기 때문에 경험만 더 쌓으면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카트만두 전지훈련을 지켜본 김 이사는 “현지 팀들과 친선경기를 많이 한 덕분에 대표팀의 기량이 크게 늘었다”며 “비록 우리가 객관적 전력에서 아시아 하위권이지만 단기전인 아시안게임에서 미친 선수가 몇 명만 나와준다면 의외의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인천아시안게임이 다가올수록 대표팀의 꿈도 커지고 있다. 아시안게임을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하는 선수들은 “한국 여자 크리켓은 이제 걸음마 단계지만 서로 똘똘 뭉치면 큰일을 낼 수도 있다”며 투혼을 불태우고 있다.
■ 크리켓 경기는
크리켓은 야구와 비슷한 룰을 가지고 있으나 전혀 다른 스포츠로 영국과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국가들을 중심으로 활성화돼 있는 구기 종목이다. 크리켓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지만 13세기 영국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1774년 최초의 경기 규칙이 만들어졌으며, 1787년에 세계 크리켓 관장기구인 영국 크리켓 연맹본부가 창립됐다.
한 팀은 11명으로 구성되며 양 팀 선수들이 위켓(세로 막대인 스텀프 3개와 가로 막대인 베일 2개로 구성)을 사이에 두고 공격과 수비로 나뉘어 서로 공을 쳐 승부를 겨룬다. 야구와 달리 홈과 1루만 있다. 투수는 공을 던져서 위켓을 맞히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타자를 아웃시킨다. 타자가 아웃당하지 않고 반대편 위켓에 있는 같은 팀의 타자와 위치를 바꾸게 되면 득점이 인정된다. 볼이 위켓에 되돌아오기 전에 이것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득점을 올린다.
크리켓은 경기당 2이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이닝에 한 팀이 공격을, 나머지 한 팀은 수비를 하고 다음 이닝에서는 공수가 교대된다. 경기 종류는 5일 동안 진행되는 '테스트매치', 하루가 걸리는 '원데이매치', 3시간 정도 소요되는 '트웬티 20'이 있다.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열리는 종목은 트웬티 20이다.
인천=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인천아시안게임 D-50] 첫 국가대표팀 첫 출전… 열정은 금메달
입력 2014-07-31 0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