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강은교] 바람길

입력 2014-07-30 02:13

그날 저녁 우리는 유리창에 매달려 몰려오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닷가 높은 아파트에 살고 있을 때였다. “엄마, 정말 멋있다….” 딸의 감탄사. 한참 그러고 있는데, 바람소리가 점차 심상치 않아졌다. 우리는 덜컹거리는 창문을 약간 붙잡고 그 자연의 장관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창틀에서 빠져나오려고 유리창이 몸부림을 치는 것 같았다. 덜컹거리는 수준을 지나서 말이다. 딸과 나는 유리창이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하려고 붙들었다. 점점 유리창의 흔들림은 거세졌다. 더 이상 붙들고 있어봐야 소용없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딸과 나는 유리창 붙든 손을 놓아버렸다. 그 순간 유리창은 넘어졌다. 우리는 혼이 빠질 정도로 놀랐다. 그러자 바람은 ‘솨악’ 소리를 내면서 집안으로 몰려들어왔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거실의 샹들리에도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 도움을 요청했다. 다행히 아랫집 남자가 올라왔다. 그는 집에 들어서자 맞은편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 창문을 열면 어떡해요? 바람이 더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바람은 소리를 지르면서 그리로 몰려나갔다. 샹들리에도 더 이상 흔들거리지 않았다. 깨진 창문으로 몰려들어온 바람은 맞은편 창문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몰려나갔다. “이럴 땐 우선 바람의 길을 만들어줘야죠.” 그 남자는 중얼거리면서 우리 집을 나갔다.

나는 누워 버렸다. 바람이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시원한 바람의 감촉이 볼을 달려 지나갔다. 창 밖을 내다보니 어느 새 아까의 그런, 길길이 뛰는 파도는 없었다. 파도는 웃으며 어깨동무한 채 하얀 띠를 바다에 펼치며 부드럽게 달려오고 있었다. 하늘도 개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바람의 길을 나는 막고 있었던 것이다(하긴 바람이 맞은편 창으로 나가다가 ‘회오리’를 일으켜 큰 사고가 날 수 있다고도 하지만). 그날 나는 바람에 깊이 사죄했다.

어제 뉴스를 보니 ‘모래언덕 문제’도 심각한 모양이었다. 억지로 세운 방풍림이 모래언덕 침식을 유도한다는 보도였다. 아마 강물들도 마찬가지이리라. 자연의 길을 막는다면 자연재해는 끊임없으리라. 길을 막아놓고, ‘바람아 돌아가다오’ 해봤자 바람이 들을 수 있을 것인가. 바람은 자기의 길을 갈 뿐인데…. 태풍철이다. 바람의 외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사람들아, 제발 나의 길을 막지 말아다오!’라는 외침이.

강은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