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나미] 나부터 반성할 줄 아는 사회

입력 2014-07-30 02:15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상앙은 법치로 국가를 개조해 중국 통일에 기여했지만 무자비하게 법을 적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상벌이 뚜렷해 왕실 재정을 부강하게 하고 군대는 강력해졌지만 백성에게는 가혹하기 그지없었다. 상인이 파산하면 온 가족이 노예가 되고, 고기와 술에는 열 배가 넘는 세금을 물리기도 했다. 법을 어긴 사람을 고발하지 않았다고 사형에 처하고, 연좌제를 만들어 백성들이 흘린 피로 강은 붉게 물들었고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하늘과 땅을 흔들었다고 한다(자오스린의 ‘사람답게 산다는 것’). 도적이 사라지고 집집마다 살림이 넉넉해지고 군인들은 용감해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면도 있었지만 결국 자신도 나라도 비참하게 된다. 역시 법치가 덕치보다 한참 못하다는 뜻이 아닐까.

남탓하는 사회의 미래 어두워

2000여년이 지나 독재자 히틀러가 집권하던 1930년대 후반도 상앙시대와 비슷한 점이 많다. 유대인 등의 재산을 몰수하고 수용소에 감금해 죽였지만 독일 국민들 입장에서는 희망적으로 보이는 치적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600만명까지 치솟던 실업자는 100만명으로 줄고 댐, 고속도로, 철도 등 각종 인프라가 구축되었고 민족주의를 진작시키는 올림픽과 오페라 등으로 사기가 오른 국민들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암시적 설득력이 강한 히틀러는 일종의 교주였다. 공산주의와 대항하고 선택받은 독일인들이 보다 행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겠다는 히틀러의 선동이 통했던 배경이다.

요즘 러시아 일본 중국 미국 등의 애국주의와 패권다툼을 보면서 과거 큰 전쟁을 일으켰던 제국의 역사를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 같다. 우크라이나 내전의 배후인 푸틴의 러시아, 영토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일본, 네팔 티베트 위구르 등 소수민족에게 무자비하기 그지없는 중국, 관타나모 수용소를 없애지 않는 미국을 보면 평화로운 지구촌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어 보인다.

그런 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것도 모자라 어떤 독재자보다 더 예측이 안 되는 집단이 바로 코앞에 있으니 대한민국이 이렇게 별일 없이 살고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물론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주변정세와 끔찍한 전쟁의 기억들은 우리를 좀 더 열심히 노력하며 살게 한 원동력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욕하면서 닮는다고 자기도 모르게 관습적으로 나쁜 것을 되풀이하든가, 남들을 따라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큰 문제다. 인간이건 국가건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측면만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융 심리학의 이론인 ‘그림자’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의식이 인식하지 못하는 무의식 영역에 있는 그림자, 즉 부정적 에너지와 콤플렉스에 휘둘려 파괴적인 선택을 하는 위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국가 개조를 한다면서 상앙이나 히틀러처럼 전체주의 국가가 될 수도 있고, 적을 물리친다면서 아무 죄 없는 자국민이나 외국인들을 무자비하게 죽일 수도 있다. 타인만 비난하기 전에 내 안에 있는 악한 심성을 의식화해서 제대로 보아야 하는 이유다.

지구촌 평화 위해 적극 나서야

우주의 모든 물질은 대칭 상태로 입자나 물질에는 반입자와 반물질이 있는 것처럼 내 마음에도 도덕적 심성과 비도덕적 측면이 공존한다. 나부터 반성할 줄 아는 사회와 모든 비난을 적에게만 돌리는 사회의 미래는 참 많이 다르다. 같은 게르만 민족이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에게 휘둘렸던 독일과 융 박사나 헤르만 헤세 같은 이들로 평화를 유지했던 스위스의 차이를 보자. 가자지구 피해 사망자의 4분의 1이 죄 없는 어린아이고, 나머지도 전쟁과 상관없는 민간인이다. 대한민국이 국내뿐 아니라 지구촌의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지 좀 더 깊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