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남선 (9) 해외선교 가장 큰 보람은 불쌍한 영혼 구제·양육

입력 2014-07-31 03:22
올해 M.I. 인도 교회에서 여성 펠로십 멤버들과 함께 특송하고 있는 필자(가운데).

해외 선교에서 가장 큰 보람은 뭐니뭐니 해도 불쌍한 영혼 구제와 양육이다. 언어도 피부도 종교도 다른 지역에서 나의 기도와 헌신으로 영혼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우리의 동역자가 되는 순간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얻게 된다.

19세인 르누 자매는 주일학교 보조교사다. 항상 미소가 그치지 않지만 그의 가정환경은 불우했다.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알코올 중독자였다. 우리는 그의 가정에 종종 심방을 가면서 기도했다. 기도가 통한 덕분인지 어머니는 2009년 부활절 때 맏딸 르누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병세가 깊어지면서 그녀는 찬송과 기도를 들은 채 2010년에 천국으로 갔다.

아버지는 아내의 죽음에서도 교훈을 얻지 못하고 술을 계속 마셨다. 딸 르누에게 막말을 하는 등 증상이 심해졌다. 우리는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이들 가족을 위해 나무집을 지어줬다. 어느 날 우리가 심방갔을 때 르누 아버지는 어린애처럼 울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그는 며칠 후 갑자기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 아내가 죽었던 같은 병원, 같은 병실, 같은 침대에서 그는 아내의 뒤를 따랐다. 선교회는 르누와 남동생 라자를 돌봤으며 라자는 M.I.(Mission International·국제선교회) 인도에서 생활하며 학교에 다니고 있다.

나란 역시 불우한 가족사를 딛고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한 소년이다. 그의 아버지는 돈과 명예에만 관심을 가진 세속적 인물이다. 어느 날 나무에서 떨어져 하반신이 마비돼 성격은 더욱 비뚤어졌다. 그는 그러나 죽기 전 교회 사역자들에게 아내와 나란을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우리 동역자들은 합심해 나란 모자를 위해 집을 지어주고 그들의 생계도 도왔다. 불행은 한번에 끝나지 않는 것 같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에이즈에 감염됐다.

부모의 잇단 아픔은 나란을 오히려 성숙시켰다. 2008년 금식기도를 하며 준비한 가스펠 캠프 때 나란은 세례를 받았다. 2012년쯤 힌두 호스텔(우리나라의 기숙사)에서 중·고교생들을 위한 집회가 있었는데 나란이 간증과 기도를 했다. 집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처음에는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조차 몰랐는데 나란의 간증을 들은 뒤 갑자기 가슴을 치고 울면서 통회자복했다.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었다. 나란은 지금 10대 찬양팀을 구성해 불신자와 영적으로 불안한 사람들 앞이라면 어디든 가고 있다. 올 초 나란은 한국인 단기선교팀과 이웃 네팔에 가서 주님의 구원을 전했고 내가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한국에 나왔을 때인 7월에도 단신으로 다시 네팔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는 지난해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흔들림이 없었다. 어머니가 하나님 품안에 들어가 있음을 확신하고 자신의 사역에 충실하겠다는 자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청년 갈렙은 돌아온 탕아였다. 2007년 나갈랜드 단기선교 때 처음 만난 갈렙 형제는 믿음이 두터웠지만 결혼을 약속한 자매와 의견차로 헤어진 뒤 방황하기 시작했다. 술과 마약을 접하면서 예수님을 멀리했다. 갈렙의 영혼이 불쌍해 중보기도를 바쳤지만 응답이 쉽게 오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그는 기도원에서 금식기도를 하며 영적으로 거듭났다.

금식을 마친 날 갈렙은 선물꾸러미를 들고 나를 찾아와 자신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며 울었다. 탕자의 귀환을 보는 아버지 심경이 이런 것이구나 하며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같이 손을 잡고 울었다. 갈렙은 지금 코이마 지역에 가서 알코올 중독 아이들을 위한 재활센터를 차렸다. 그는 이를 M.I.에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과거 자기처럼 어둠의 길을 걷고 있는 어린 양들을 인도하겠다는 말과 함께.

정리=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