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초기에는 기업의 기부행위를 죄악시했다. 19세기말 미국은 기업 경영진이 기부를 하는 것은 주주에게 직접적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보고 법으로 금지했다. 1881년 매사추세츠 법원은 철도회사와 지역 음악악기 회사가 지역 철도변에서 개최하기로 했던 음악회 협찬을 불허했다.
올드 미션 포틀랜드 시멘트(Old Mission Portland Cement)와 이 회사 주주인 헬버링 사이에 벌어진 소송은 당시 분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법원은 1934년 회사에 직접적인 이익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로 올드 미션 포틀랜드 시멘트가 샌프란시스코 공동모금회에 기부를 하지 못하도록 판결했다.
하지만 1952년 금기가 깨졌다. 재봉틀 회사인 A.P스미스가 프린스턴 대학에 1500달러를 기부하자 주주인 바로우는 ‘주주에게 돌아갈 이익을 왜 대학에 기부하느냐’며 무효 소송을 냈다. 뉴저지 법원은 기업의 기부행위가 직접적 이익과 무관하지만 사회적 책임의 범주로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기업의 기부·자선행위는 법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1980년대부터 미국 포천(Fortune)지는 존경받는 기업 순위를 매길 때 사회적 책임을 포함시켰다. 다우존스는 지속가능성 지수(DJSI) 구성 종목에 사회공헌 실적을 높은 비중으로 평가하고 있다.
불과 50여년 만에 상황이 판이하게 바뀐 것이다. 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일까. 우선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기업은 경제, 사회 등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무수한 이해관계자들과 상호 작용하는 사회적 유기체다. 동시에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보유하고 있다. 정부가 할 수 없는 부분, 정부 예산으로 감당할 수 없는 부분에 기업이 뛰어들어 사회공헌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기업은 사회공헌을 할까. 장기적으로 볼 때 기업이 얻은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돌리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이미지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미래 시장·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각 기업은 사회공헌에 더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사회공헌 방식도 기부에서 벗어나 자원봉사, 사회적기업 설립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바야흐로 착한 기업, 따뜻한 기업, 함께 가는 기업이 성공하는 기업이 되는 시대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
[따뜻한 기업 함께가는 기업] 더불어 다같이… 아름다운 세상 만들어요
입력 2014-07-3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