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첫 단기선교 이후 수차례 인도를 다녀오면서 집회 및 세미나를 통해 인도인들의 영적 메마름을 목격했다. 이곳에서의 선교 필요성을 느끼면서 기도를 통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갈랜드는 힌두교 국가 인도의 한 지역이지만 200년 전 미국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한 이후 주민 90% 이상이 크리스천일 정도로 기독교세가 강하다. 신앙적 기반을 고려하면 선교하기가 쉬운 지역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크리스천 수는 많지만 질적인 영적 수준은 높은 편이 아니다. 이른바 ‘나이롱’ 신자들이 많다. 일부 젊은 세대들은 신앙의 순수성을 잃어버려 알코올 마약 등 나쁜 습관에 물들어 있기도 해 사역의 중요성을 높이고 있다.
특히 이곳의 지리적 특성을 더욱 중요하게 봤다. 나갈랜드는 뉴델리 방갈로르 콜카타 고하티 오릿사 등 기독신앙이 척박한 지역으로의 왕래가 용이하다. 또 육로로 네팔과 부탄까지 갈 수 있다. 힌두교 신자와 무슬림을 위해 사역하고자 하는 선교사에게는 이곳 나갈랜드가 전략적 신앙의 요충지나 다름없다. 실제로 나갈랜드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보니 하나님이 마지막 시대에 한국처럼 세계 선교를 위해 제사장 국가로 선택한 곳이라는 느낌을 받게 한다.
서울에서 M.I.(Mission International) 선교 디렉터로 사역 15년, 담임목사로 교회 사역 10년을 정리하고 2007년 12월 5일 나갈랜드 장기 사역자로 선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겠다는 의지로 출발했지만 타향의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국보다 열악한 환경을 각오하긴 했지만 정도는 예상을 넘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쥐가 침대 주변에 출몰하는 것은 예사였다. 뱀 도마뱀을 비롯해 각종 곤충까지 득실거려 처음에는 수시로 괴성을 질렀다. 난방시설이 안 된 방에서 지내는 겨울 밤 추위는 그야말로 살을 에는 듯했다. 수도가 없는 이곳에서 물을 끓여 먹어도 수질이 좋지 않아 장티푸스에 걸리기도 했다. 종족 간 갈등으로 들려오는 총소리도 섬뜩했다. 하지만 하나님이 지시한 일에 이 같은 시험이 없을 수는 없는 법이다. ‘오직 주님’이라는 자세로 기도만을 거듭하며 주변의 환경을 이겨나가기로 했다. 척박한 사역인 만큼 보람도 컸다.
나갈랜드에 온 뒤 형제자매들과 영적 공동체를 이루면서 매일 아침 6시부터 밤 9시까지 경건의 시간과 기도, 신학 강의, 제자 훈련을 반복했다. 기도 끝에 영혼의 안식처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근사한 성전은 아니었지만 2008년 2월 하얀 천막 성전을 보내주셨다. 평범한 텐트지만 내가 이곳에 와서 겪은 일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화려한 성전은 없어 보인다. 무더위와 뙤약볕 속, 천둥과 폭우가 몰아칠 때도 신앙의 찬양과 기도는 이곳에서 지속됐다.
2008년 11월부터 M.I. 센터 건축을 시작했다. 이 건물을 짓기까지 재정적 어려움도 많았지만 고비마다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셨다. 계약이 결렬되기 직전 한국의 선교단체 및 교회,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부지매입금을 마련하기도 했다.
M.I. 센터 1층 공사가 2012년 9월에 끝났다. 인간의 눈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은 건축에 하나님은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셨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있는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실, 컴퓨터실, 도서관이 이때 처음 들어섰다. 우리는 이제 강의실과 숙소 확충을 위해 2층 건축에 돌입했다. 예산은 역시나 부족하다. 사역자들과 달력을 만들어 집집마다 팔기도 하고 건축헌금을 모으면서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
[역경의 열매] 박남선 (8) 선교 요충지 나갈랜드서의 시험 ‘뱀·해충·테러…’
입력 2014-07-30 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