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중부의 호이안, 후에, 다낭은 ‘한국판 경주’로 불리는 유적지 및 휴양지이다. 인천공항에서 다낭까지 직항편이 개설되어 있는데다 도시를 연결하는 교통편도 많아 지난해에는 중국에 이어 한국 관광객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골프투어와 함께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자유여행객도 꾸준히 늘고 있어 하롱베이에 이은 제2의 여행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호이안=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호이안은 투본 강 하구의 삼각주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올드 타운으로 불리는 옛 마을은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800여채의 고가로 이루어진 옛 마을은 참파 왕국과 응웬 왕국 이래 중국·인도·아랍을 연결하는 중계무역 도시로 번성했다. 그러나 베트남전쟁 때 격렬한 전투로 도시 일부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마을 전체가 영화 세트장이나 다름없는 호이안의 고가는 재래시장에서 내원교를 잇는 약 800m의 쩐푸 거리에 밀집돼 있다. 미술품점, 골동품점 등 화려한 간판으로 치장한 고가들의 유혹에 넋을 잃은 관광객들은 보물창고 안을 기웃거리고 하얀색 아오자이 차림의 베트남 여학생들은 이방인들이 신기한 듯 흘끔거린다.
호이안 역사문화박물관 앞에 위치한 재래시장은 베트남 여인들의 억척이 오롯이 배어 있는 삶의 터전이다. 아오자이를 걸치고 원뿔형 모자인 논(non)을 머리에 쓴 베트남 여인들이 어눌한 영어로 호객을 하고, 오토바이와 자전거에 산더미처럼 물건을 실은 여인들은 투본 강의 선착장과 재래시장을 시계추처럼 바삐 오간다.
고색창연한 쩐푸 거리는 중국 색채가 짙다. 16∼17세기 일본 무역상들이 거주하던 일본인 마을이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으로 쇠퇴하면서 화교들이 대거 이주해 온 때문이다. 화교들의 향우회 장소로 이용되는 복건회관은 대표적인 중국식 건물. 복건회관 옆에 위치한 ‘바다의 실크로드 박물관’은 침몰선에서 인양한 동서양의 도자기들을 전시하고 있다.
중세풍의 호이안 거리는 밤마다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전깃줄을 비롯한 온갖 무질서한 사물들이 어둠에 묻히면 레스토랑과 카페, 호텔로 변신한 고가들은 형형색색의 등을 밝힌다. 투본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박당 거리는 야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허니문 촬영지로도 이름이 높다.
◇후에=1802년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웬 왕조의 수도인 후에는 베트남의 교육·문화·종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는 프랑스군과 전쟁을 겪었고, 베트남전쟁 때는 미군과의 격렬한 전투현장이기도 했다. 후에 시내는 흐엉 강을 중심으로 북서쪽은 구시가지, 남동쪽은 신시가로 나뉜다.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구시가지의 후에 성은 1804년부터 짓기 시작해 1833년 완성된 왕궁이다. 그러나 여러 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성벽과 해자 등 일부만 옛 모습을 간직했을 뿐 나머지는 대부분 파괴됐다가 일부만 전쟁 후에 복구됐다.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10개로 모두 해자 위로 난 다리를 건너서 들어갈 수 있다.
연꽃이 만발한 해자를 건너 예인문으로 들어서면 맨 먼저 청동으로 만든 6문의 대포가 나오고, 왼쪽으로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37m 높이의 깃발탑이 보인다. 1809년 최초로 만들어진 후 몇 차례에 걸쳐 재건축된 깃발탑에는 붉은 바탕에 노란색 별이 그려진 베트남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민망 황제 시대에 지어진 응오문 위의 누각은 국가의 중요한 행사 때 황제가 이용했던 곳으로 1945년 응웬 왕조의 마지막 왕인 바오다이 황제가 호찌민 혁명 정부에 권력을 넘겨줬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응오문을 지나 왕궁 안으로 들어서면 황금색 기와지붕으로 단장한 태화전이 나온다. 태화전은 황제의 즉위식 등이 열렸던 곳. 태화전 뒤에는 황제와 가족을 위한 사적 공간인 자금성이 있지만 북베트남군의 공격으로 거의 파손돼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응웬 왕조의 왕릉은 흐엉 강을 따라 남쪽으로 5㎞에서 14㎞에 걸쳐 있다. 1916년부터 1925년까지 통치했던 카이딘 황제의 능은 1920년부터 11년 동안 만들어졌다. 높은 언덕에 위치한 데다 입구부터 계단을 올라야 왕릉에 들어갈 수 있어 장엄함이 느껴진다. 회색 콘크리트로 건축된 카이딘 황제 능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져 베트남과 유럽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데다 세월이 흐르면서 검게 변색돼 독특한 모양을 자랑한다. 이밖에도 강변을 따라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는 민망 황제 능을 비롯해 지아롱 황제, 티에우찌 황제의 능이 보존돼 있다.
◇다낭=베트남 중부의 최대 경제도시인 다낭은 2세기부터 15세기까지 소수민족인 참족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한 해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는 다낭의 중심지에는 참족이 남긴 3000여점의 조각품을 전시한 참 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이곳에 전시된 조각품은 참족의 주요 근거지였던 미선, 동즈엉, 빈딘, 꽝남 등지에서 발견된 유물로 발굴 장소와 연대별로 분류해 전시하고 있다.
참 박물관 앞에는 한 강을 가로지르는 666m 길이의 용다리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 완공된 용다리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실제로 불과 물을 뿜는 장관을 연출한다. 중세 유럽풍으로 꾸며진 연분홍색의 다낭 성당 인근의 강변 조각공원 앞에는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재래시장이 눈길을 끈다. 베트남 여성들이 어깨에 메고 다니는 지게인 가인에 바나나 등 열대과일을 잔뜩 쌓아놓고 팔고 있다.
베트남을 대표하는 휴양도시답게 다낭에는 30㎞에 이르는 긴 차이나 해변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들이 파티를 자주 열었다는 미케 해변을 비롯해 박미안, 논느억 등으로 이루어진 차이나 해변은 한낮의 뜨거운 햇살을 피해 해가 지고나면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다낭 외곽에 위치한 바나힐 국립공원은 기네스북에 등재된 케이블카로 유명하다. 케이블의 길이가 5771m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긴 케이블카는 출발역과 도착역의 표고차가 1368m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원시림과 계곡을 감상하며 25분을 오르면 산꼭대기에 들어선 고성 모양의 바나힐스 리조트가 반긴다. 온갖 놀이기구가 설치된 바나힐스 리조트에서 내려다보는 다낭 시가지가 아름답다.
호이안·후에·다낭=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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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강물따라 흐르고 역사는 파편되어 쌓였네… ‘베트남판 경주’
입력 2014-08-07 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