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예고 없이 시범운영을 시작한 서울 용산 화상경마장이 28일로 개장 한 달을 맞았다. 한국마사회는 프리미엄 전략을 내세우며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취재팀이 지난 21일부터 1주일간 이 경마장 주변을 지켜본 결과 행패를 부리는 취객은 물론 무단횡단과 불법 주차 등 시민 불편 현장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27일 오후 6시쯤 중년 남성 A씨가 표정을 잔뜩 찡그린 채 화상경마장에서 나왔다. 오른쪽 겨드랑이에는 경마정보지가 구겨진 채로 끼워져 있었다. 다가가자 “돈을 잃었다”고만 하고는 도로 쪽으로 걸어가 길가에 세워둔 승용차에 올라탔다. 노변 주차장도 아닌데 A씨 차량 앞뒤로 주인을 기다리는 자동차 10여대가 줄지어 서 있었다. 마사회는 이 경마장에 400대 규모의 무료 주차장을 갖춰 놓았지만 이미 주변 도로는 불법주차 차량들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원효대교에서 내려오는 차량들로 붐비는 길목이어서 사고 위험도 다분해 보였다.
1시간쯤 뒤 구겨진 셔츠에 트레이닝복 차림의 남성 B씨가 멍한 표정으로 경마장에서 나오더니 도로 건너편에 불법 주차된 자신의 차를 향해서 왕복 6차선 대로를 무단횡단하기 시작했다. 달려오던 차들이 놀라 급정거를 하고 경적을 울려댔지만 B씨는 막무가내였다.
‘큰 거 한방’을 노리는 사람들이 경마장 밖에서 마권을 사들이는 모습도 목격됐다. C씨는 경마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마권 없느냐”고 묻고 다녔다. 한 명이 호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를 꺼내자 그는 잽싸게 이를 받아 경마장 안으로 들어갔다.
C씨가 받은 것은 사실 마권이 아닌 ‘구매권’이다. 10만원 단위로 미리 돈을 주고 사서 갖고 있다가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 1인당 마권 구매 상한선(10만원)이 정해져 있다 보니 이렇게 구매권을 모아 한 번에 더 큰 베팅을 하려는 것이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D씨는 “크게 베팅하는 사람들은 저렇게 알바들을 고용해 구매권을 모은다. 구매권 거래가 불법이다 보니 은어로 ‘마권’이라고 표현한 것”이라며 “마사회 단속을 피해 주로 건물 밖에서 조심스레 이뤄진다”고 말했다.
오후 8시쯤 마지막 경주가 끝나자 화상경마장에 남아 있던 100여명이 한꺼번에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어깨가 서로 부딪히자 싸움 직전까지 가는 멱살잡이를 했고 돈을 잃은 허탈감에 눈을 감은 채 차도를 걷는 남성도 있었다. 주민 조모(47·여)씨는 “주말이면 밤 9시만 돼도 술 취해 소리 지르고 행패 부리는 사람이 생겼다”며 “돈 잃고 도박장에서 나와 동네 주민들만 불안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인근의 작은 공원에는 담배꽁초가 곳곳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마사회가 고용한 아르바이트생들이 주워 담았지만 너무 많은 이들이 버려대다 보니 역부족이었다. 지난 23일 이곳에서 만난 성심여중 1학년 김모(13)양은 “지난 주말 저녁 8시쯤 친구들을 만나러 이 공원에 왔는데 아저씨 4명이 ‘1번 말이 어떠네’ 하더니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며 “한 아저씨가 막 욕을 하면서 ‘내 돈, 내 돈, 내 돈’ 하기에 무서워서 바로 도망쳤다”고 말했다.황인호 임지훈 이종선 기자
inhovator@kmib.co.kr
[르포] 조용하던 동네에 커지는 ‘불편·불안’
입력 2014-07-29 0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