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농촌목회? 농부 목사 돼야죠”

입력 2014-07-29 02:50
손주완 목사가 지난 25일 충북 충주 앙성면에 있는 양계축사에서 닭이 막 낳은 달걀을 손에 쥐고 있다. 충주·원주=허란 인턴기자
손 목사가 강원도 원주 귀례면 작은예수공동체 뒷산에 있는 밭에 잡초 방지포를 깔고 있는 모습.
지난 25일 낮 강원도 원주 귀례면 주포리 작은예수공동체. 점심식사를 마친 손주완(52) 목사가 1t 트럭에 커다란 고무대야 7개와 속이 가득 찬 비닐포대 10여 자루를 실었다.

2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충북 충주 엄정면 신만리 ‘장신영농조합’. 손 목사는 기다리고 있던 예장통합 농촌선교센터 박용철 목사와 함께 비닐포대에 들어 있던 쌀겨와 청치(덜 여물어 푸른 빛깔을 띤 쌀알), 톱밥, 어분말(멸치·새우 가루), 깻묵 등을 사료배합기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원주농업기술센터에서 무료로 제공받은 배양 미생물을 지하수에 섞어 부은 뒤 배합기를 돌리자 유기농 사료가 완성됐다. 대야에 옮겨 담아 다시 30여분 차를 몰자 충주 앙성면 야산 중턱의 양계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손 목사가 들어서자 닭들이 날개를 푸덕거리며 모여들었다. “제가 목회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녀석들입니다”라며 손 목사는 미소를 지었다.

손 목사가 원주에 터를 잡은 것은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한 1991년이다. 그는 “서울 광성교회 대학부에서 봉사동아리를 이끌며 가난한 이웃을 섬기는 목회자가 되기로 서원했다”면서 “신대원 졸업을 앞두고 목회를 하면서 소외된 노인들을 섬기기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손 목사는 무의탁 노인들을 돌보기 위한 시설을 세우기 위해 결혼할 때 얻은 전셋집의 보증금을 뺐다. 서울 토박이여서 웬만하면 수도권에 부지를 구하고 싶었지만 가진 돈으로는 어림없었다. 결국 지인의 소개로 귀례면에 부지를 구입해 작은예수공동체를 세웠다.

먼저 지역의 무의탁 노인들부터 돌보기 시작했다. 그는 “평생 치열한 삶을 살았지만 노년에 돌봐줄 가족이 없어 끼니를 거르고, 병에 걸리는 노인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면서 “돌아가신 뒤에 장례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분들도 있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손 목사는 성도들의 헌금과 동료 목회자 등의 후원금으로 무의탁 노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머물 공간도 제공했다. 돌아가신 분들의 장례식을 치르고 뒷동산에 묘지도 만들었다. 가족은 있지만 치매 등에 걸려 도움이 필요한 노인들도 모셨다.

사역 초반에는 외지인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텃세도 겪었다. 손 목사는 “지역의 생활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바른 목회를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농사를 시작했다”면서 “목회자가 직접 농사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농촌 목회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행착오 뒤에 고추 고구마 호박 옥수수 등 작물을 기르는 법을 터득했다. 100% 자급자족은 아니었지만 작은예수공동체에 머무는 노인 13명의 요깃거리가 될 만한 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도 닫혀 있던 마음을 열어 그를 ‘농부 목사’라고 불렀다.

사역이 안정권에 접어들 무렵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대부분 농촌이 그렇듯 귀례면에도 이농현상이 심해졌고, 이는 자연스레 지역교회 성도의 감소와 고령화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지역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헌금에서 나오는 사례비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려워졌다. 손 목사도 마찬가지였다. 헌금과 후원금만으로는 어르신들을 돌보는 데 쓰기도 모자랐다. 주위에 목회를 접고 떠나는 이들이 속속 생겨났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손 목사는 ‘농사’에서 해법을 찾았다.

2004년 2월 뜻을 같이하는 원주와 충주 등 인근 지역 7개 교회 목회자들과 함께 장신영농조합을 설립했다. 조합 이름은 이들 목회자 대부분이 예장통합 소속으로 장신대를 졸업한 데서 착안한 것이다. 손 목사는 “목회를 통해 지역을 변화시키려면 오랜 시간 그 지역을 섬겨야 한다”면서 “영농조합을 만들어 수익을 올리면 재정문제를 해결하고, 목회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영농조합에 참여한 교회들은 느타리버섯과 호박, 가지와 된장, 고추장 등 저마다 특화된 작물을 생산·가공해 매주 한 차례 도시 교회와 직거래를 하고 있다. 도·농 교회 간 교류의 하나로 농촌교회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손 목사는 최근 양계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늘푸른교회 정규성 목사 등 2명과 함께 닭 2000마리를 키우며 달걀을 판매해 월 400여만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단골만 200여명인데 이 중 100여명은 일주일에 3차례 이상 달걀을 구입한다.

장신영농조합원들은 화학비료나 항생제가 들어 있는 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손 목사는 "비용이 더 들어도 유기농법을 고집하는 이유는 생명을 살리는 목회의 일환이기 때문"이라며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는 일꾼이 되길 소망하며 목회와 농사일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충주·원주=이사야 기자 l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