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박정태] 최경환의 식탁

입력 2014-07-29 02:17

최경환의 주방에는 먹거리가 많다. 뷔페를 준비한 것처럼 음식이 다양하다. 예전 주방장의 먹거리는 한정돼 있었다. 편식을 하듯 거의 매일 먹었던 ‘성장용’ 음식 종류에서 좀처럼 탈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했다. 전통 음식만의 한계를 인식해 한식은 물론 외식, 퓨전식 등을 골고루 마련했다. 그 결과 가계소득 증대, 비정규직 처우 개선, 소상공인 지원 등 ‘분배용’ 신메뉴가 선보였다. “지도에도 없는 길을 가야 할지 모른다”는 선언대로 기존 레시피를 통해서는 불가능했던 기업소득 환류세(사내유보금 과세)라는 독특한 메뉴까지 등장했다.

초대 손님들이 다소 의아해할 정도다. 외견상 메뉴는 풍성하다. 그런데 맛이 있는지, 몸에 좋은지는 아직 모른다. 손님 취향에 따라 평가도 저마다 다르다. 걱정스러운 눈길도 보낸다. 과다한 음식비용 때문에 재정 건전성을 걱정하고, 어느 주방장도 건드리지 못했던 부동산 대출(LTV·DTI) 규제 완화로 가계부채라는 뇌관이 터질지 모른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이 메뉴들이 무기력증에 빠진 몸의 피를 제대로 돌게 하고 활력을 되찾도록 할지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이들도 많다.

정책 효과 보려면 기업협조 절실

후속작업은 세제개편이란 상차림이다. 주방에서 음식이 하나둘 식탁으로 옮겨지면서 상차림 윤곽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최경환의 식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단연 기업소득 환류세다. 기업이 향후 발생하는 순이익을 임금과 배당, 투자 등에 일정 수준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추가 과세를 하겠다는 것이다. 경제의 교과서적인 선순환 구조가 뒤틀려 있으니 변칙적 방식을 통해서라도 내수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재계 반발이 만만치 않다. 재계는 전체적 방향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생소한 메뉴에는 떨떠름한 모습이다. 이중과세라고 지적하고 식탁에서 빼 달라고 한다. 재계 지적이 맞다. 세금을 다 내고 난 뒤의 이익금을 쌓아놨다고 해서 세금을 또 부과하는 건 온당치 못한 일이다. 배당 등을 통한 내수 진작 효과도 불분명하다. 그럴 바에야 법인세 인상이라는 정공법을 들고 나와 그 재원을 경제 회복에 활용하는 게 순리다. 주방장이 어제 방송기자클럽토론회에서 “법인세 인상은 검토하지 않는다” “법인세에 일정 부분을 추가해 부과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 그게 그거 아닌가. 인상분 집행을 보류했다 케이스별로 회수하는 것인데….

재계도 기업가 정신 발휘해야

사실 정부로서는 그간 재계를 위해 할 만큼 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법인세를 25%에서 22%로 인하해줘 기업의 세 부담은 28조원이나 줄었다. 그때뿐인가. 노무현정부 때에도 법인세가 3% 포인트 깎였다. 투자와 고용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재계는 지금까지 규제 완화만 외치며 금고에 자금을 쌓아 왔다. 올 1분기 말 10대 그룹 사내유보금은 515조원이 넘는다. 이 중 현금성 자산이 얼마 안 된다지만 국민의 시선이 따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로서도 더 이상 인내심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게다.

정부와 재계가 맞설 때는 아니다. 경제 살리기가 급선무다. 관건은 기업 투자인 만큼 정부가 재계 의견을 적절히 참작해 세제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합리적 규제개혁이 뒤따라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재계도 실종된 기업가 정신을 회복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 학자 피터 드러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생존에 관련된 문제”라고 일갈했다.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이 요구된다. 최경환 식탁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경제주체의 심리를 살리자는 데서 출발한다. 구체적 접근방식과 효과에 의문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지만 세제개편 작업에서 가계와 기업에 보양식이 되는 식탁을 차려주길 바란다.

박정태 산업경제센터장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