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

입력 2014-07-29 02:14
18세기 조선 화원화가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부분)'. 백성들은 성실히 살아가고 군주는 백성들을 덕으로 다스리는 이상향의 세계를 그린 작품으로 8m50㎝에 이르는 두루마리 대작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인 14∼15세기 작가 미상의 '귀거래도'. 중국 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화폭에 옮긴 작품으로 한국에 처음 선보인다.
일본 마지막 문인화가 도미오카 뎃사이가 1904년에 그린 '무릉도원도'. 현실과 경계를 이루는 산을 지나면 목가적 분위기의 도원(桃源) 전경이 드러난다.
중국 시인 도연명(365∼427)은 낙향과 전원생활의 기쁨을 ‘귀거래사(歸去來辭)’를 통해 노래했다. 이 시는 은거를 꿈꾸는 문인들의 이상향의 전형이 돼 숱한 예술작품의 주제가 됐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인 14∼15세기 작가 미상의 ‘귀거래도’는 중국 회화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명품 가운데 하나다. 청록의 산수가 자연친화적이고 탈속한 도연명의 시경(詩境)과 조화를 이룬다.

이 작품이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9일부터 9월 28일까지 한국 중국 일본의 대표적 명품 산수화들을 전시하는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 특별전에 출품됐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삼성미술관 리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중국 상하이박물관, 일본 교토국립박물관 등 국내외 주요 박물관에 소장된 한·중·일 산수화 109점이 전시된다.

‘이상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오랫동안 널리 애호되었던 회화 주제 가운데 하나다. 이번 전시는 이상향을 그린 한·중·일의 정통 산수화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전시다. 동아시아 회화의 큰 흐름 속에서 형성된 이상적인 삶과 사회의 모습을 찾아보려는 시도다.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이 각국 박물관 측과 긴밀한 교류 및 협의 끝에 작품을 들여왔다.

18세기 조선 화단에서 쌍벽을 이룬 이인문(1745∼1821)과 김홍도(1745∼?)의 대작 산수화가 오랜만에 대중들에게 공개된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는 길이 8m50㎝에 이르는 대형 두루마리 작품이다. 김홍도의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는 자연 속의 삶을 높은 벼슬과 바꾸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중국과 일본 명작 42점도 국내 처음 선보인다. 일본의 ‘마지막 문인’이라 불리는 도미오카 뎃사이가 1904년에 그린 ‘무릉도원도’와 ‘봉래선경도’가 짝을 이루는 대형 병풍이 볼만하다. 중국의 이상향인 봉래산과 무릉도원은 일본에서도 자주 활용됐다. 현실과 경계를 이루는 험준한 산을 지나면 목가적 분위기로 묘사된 도원의 세계가 드러난다.

중국 후난성(湖南省) 동정호(洞庭湖) 일대의 빼어난 여덟 경관을 일컫는 ‘소상팔경’은 문인들이 계절의 변화에서 느끼는 감정과 철학적 사유를 담기 좋은 주제였다. 중국 명나라 화가 문징명의 ‘소상팔경도’, 일본 무로마치 시대 화가 소아미의 ‘소상팔경도’를 비교해볼 수 있다. 조선후기 화가 겸재 정선이 경복궁 근처 8곳의 풍경을 그린 ‘장동팔경도’도 전시된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그리고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소박한 이상향으로 산수를 택한 작가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여류화가 백남순의 1937년 작품 ‘낙원’과 평화로운 농촌의 풍경을 그린 청전 이상범의 산수화 등이 걸렸다. 각박한 도시에서 벗어나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을 그린 장욱진의 1980년대 작품 ‘풍경’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된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