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지붕 없는 감옥

입력 2014-07-29 02:20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에는 중세풍의 오래된 그레이프라이어스 교회가 있다. 평민들만 예배를 드렸다는 그레이프라이어스 교회는 소박하다.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은 이 교회가 유명한 것은 순교자 무덤들로 가득한 정원 때문이다. 이곳에는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의 기독교 박해로 순교한 사람들이 묻혀 있다.

메리 여왕은 신자들을 교회 뒤뜰의 감옥에 가뒀다. 이 감옥은 특이하게도 지붕이 없다. 수감된 사람들은 언제든지 높이 140㎝가량의 돌담을 넘어 감옥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탈출하는 사람을 붙잡지도 않았다. 그러나 담을 넘는 순간 신앙을 포기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신자들은 ‘지붕 없는 감옥’을 벗어날 수 있었음에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렸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지붕 없는 감옥으로 불린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붙인 별칭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스라엘과 접한 육지는 베를린 장벽(높이 3.6m)보다 높은 8m의 콘크리트 장벽으로 차단돼 있고, 바다는 이스라엘 해군에 봉쇄돼 가자지구 주민들은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신세다. 가자지구의 지붕 없는 감옥은 담을 넘을 수 없다는 점에서 에든버러의 그것과 다르다.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가 1000명을 넘었다. 대부분의 희생자는 어린이 등 무고한 민간인이다. 거듭된 국제사회의 압박과 호소에도 이스라엘은 오불관언이다. 이스라엘의 보복은 자위권 차원을 넘어 반인도적 전쟁범죄에 가깝다. 홀로코스트 피해자인 이스라엘이 가해자가 되어가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진행 중이다.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100만 달러(약 10억2000여만원)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국내 대기업 하나가 내는 불우이웃돕기 성금보다 턱없이 적은 액수다. 그럼에도 정부는 “팔레스타인이 처한 인도적 위기상황 등을 고려해 결정했다”고 생색을 냈다.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고려했다면 지난 23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채택된 ‘이스라엘 가자지구 공격 조사 결의안’ 표결에서 기권이 아닌 찬성표를 던졌어야 옳았다.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지위를 무색케 하는 행동을 하면서 인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나라는 2009년 ‘대이스라엘 규탄 결의안’ 표결 때도 기권했었다. 유대인의 영향력이 전무하다시피 한 우리나라부터 이러니 이스라엘의 안하무인 행동이 도를 더해가는 듯하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