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정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 가수죠. 저는 어르신들의 피에로고. 그래도 ‘제2의 장윤정’보다 금잔디로 불리고 싶어요.”
트로트 가수 금잔디(본명 박수연)는 최근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장윤정은 정통 트로트가 아니다”라고 한 말이 화근이 됐다.
금잔디는 장윤정 박현빈 등이 부르는 세미 트로트와 달리 구성진 정통 트로트를 부르며 인기를 끌고 있다. 전국 고속도로를 점령했다고 할 만큼 운전기사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 ‘고속도로의 여왕’이라 불린다. 1년에 평균 500여회 행사를 소화하고, 근래엔 방송 출연도 잦아졌다.
지난 27일 국민일보에서 금잔디를 만났다. 먼저 장윤정 발언에 대해 물었다.
“장윤정이 없었다면 트로트 대중화는 어려웠을 겁니다. 앞으로 트로트 시장이 커지려면 세미 트로트와 정통 트로트가 공존해야 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어요.”
오해가 생겨 안타깝다는 표정이다. 그러면서도 정통 트로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한(恨)과 같은 정서를 담고 있는 정통 트로트의 역할을 세미 트로트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금잔디가 정통 트로트에 애착을 가지는 것은 자신의 삶에 깃든 한을 노래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의 고속버스 사업이 망하고 난 뒤 그녀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새 교복을 입어본 적이 없었고, 비싼 등록금 때문에 대학 진학도 포기했다. 1년 재수 기간 건설 현장에서 경리일을 하고 식당 주방에서 일을 하면서 학비를 벌었다. 공주의 2년제 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한 뒤 동덕여대 방송연예과로 편입했다. 금잔디는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는 것 같은 나훈아 선생님의 공연을 본 뒤 연기가 배우고 싶어져서 편입을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학 시절 역시 고단했다. 2만원짜리 점심을 먹는 친구들을 보며 거리감을 느끼던 금잔디는 일단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가수로 정식 데뷔하기 전부터 유흥업소 밤무대를 뛴 이유가 거기 있다.
“오후 4시 수업이 끝나면 화장을 하고 중고로 산 차를 몰고 달렸습니다. 명동부터 영등포, 구로, 가리봉 등 새벽 2시까지 밤무대 8개를 홀로 뛰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덕에 2000년 기획사를 만나면서 가수 데뷔의 꿈을 이루는 듯 했다. 그러나 기획사 대표는 방송 출연을 이유로 밤무대 행사를 그만두게 하고는 음반도 안 내고 방송 출연도 안 시켰다. 월세 보증금은 사라졌고 라면으로 세 끼를 때우는 경우도 허다했다.
금잔디에게 다시 행운이 찾아온 것은 2008년, 지금의 올라엔터테인먼트 김태우 대표를 만나면서부터다. 트로트에 대한 생각이 같다는 것을 확인한 금잔디는 과감히 계약을 결심했다.
“계약하자던 김 대표가 3개월간 잠적했다가 나타났어요. 알고 보니 직전에 만든 음반이 망했더군요. 저더러 좋은 사람 만나 음반 만들라고 했어요. 제가 ‘없는 사람끼리 일 한 번 내보자’고 말했죠.”
이때부터 김 대표는 음악을 찾으러 다녔고 금잔디는 음반 제작 자금을 모았다. 금잔디란 이름을 알리게 된 건 트로트 메들리 앨범 ‘트로트 금잔디’였다. 경쾌한 노래들로만 채웠는데, 관광버스나 화물차 운전기사들 입맛에 딱 맞았던 것이다.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그녀의 노래를 틀기 시작했다. 2010년부터 현재까지 8집이 나온 이 메들리 음반은 누적 판매로 100만장을 돌파했다. 10년 무명 생활을 청산하는 순간이었다.
금잔디는 1집 일편단심(2011년), 2집 오라버니(2013년) 등 정규 트로트 앨범도 꾸준히 내고 있다. 출연을 요청하는 방송 프로그램도 늘고, 일본 기획사로부터 공연 제안도 받았다. 일이 잘 풀리니까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지난 4월 내놓은 2.5집이 세월호 사고로 큰 반응을 얻지 못해 울적할 법도 한데 최근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며 즐거워했다. 그녀는 “신용불량자로 살던 저로선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긴 무명 생활 뒤 찾아온 기적 같은 성공을 만끽하고 있는 금잔디는 요즘 트로트를 하는 후배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고 산다.
“정통 트로트는 정서를 담아야 한다는 점에서 가장 부르기 어려운 노래임에도 B급 문화로 보는 시선이 많아요. 그래도 저를 따라 정통 트로트 앨범을 내는 후배들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인터뷰] “제2 장윤정 아닌 ‘금잔디’로 불러 주세요”
입력 2014-07-29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