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현대·SK 등 ‘빅7’을 포함한 28개 건설사들이 호남고속철도 공사 입찰을 담합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40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역대 과징금 규모로는 두 번째, 건설사 담합과징금으로는 최대 금액이다. 이들 건설사는 서울시내 카페에서 ‘사다리타기’를 통해 입찰자를 정하는 등 건설사 특유의 ‘의리’로 똘똘 뭉쳐 담합을 진행했다. 그러나 담합을 주도한 삼성물산의 합법적인 ‘배신’에 역대 두 번째로 많은 과징금 폭탄을 맞게 됐다.
◇건설사에 담합은 일상=공정위는 27일 28개 건설사에 435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15개 건설사 법인과 빅7 담당임원 7명을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고 밝혔다. 2006년부터 추진돼 올해 완공 목표 예정인 호남고속철 공사는 184.5㎞의 철도망을 잇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건설사들은 2009∼2010년 모두 20개 공구 사업 중 최저가입찰제 방식 13개를 포함해 17개 공구에서 낙찰가 3조5980억원에 달하는 입찰담합을 저질렀다. 이들은 사실상 모든 담합수법을 동원했다. 우선 최저가입찰 13개 공구를 나눠 갖기 위해 건설사 수주순위에 따라 A, B, C 세 그룹으로 나눴다. 빅7 건설사가 7개 공구를 먼저 제비뽑기를 통해 선점한 뒤 시공능력이 떨어지는 B, C그룹에서 6개 공구를 나눠 먹었다. 들러리만 선 건설사는 나머지 4개 공구에서 이득을 챙겼다.
1-2공구의 경우 삼성물산과 SK건설은 2009년 11월 투찰가격을 합의했다. 2개사는 뒤늦게 입찰 참여의사를 밝힌 경남기업에 들러리를 서게 하고 투찰가격을 정해 통보했다. 결국 삼성물산은 투찰률 0.07%라는 간소한 차이로 낙찰을 받았다.
담합으로 인해 가격경쟁이 되지 않으면서 호남고속철 공사의 전체 낙찰률은 78.53%로 다른 최저가공사 평균 낙찰률(73%)보다 높았다. 수천억원의 국민세금이 낭비된 셈이다.
고속철 공사는 설계·시공 능력 등이 우수한 입찰참가자격(PQ·Pre-Qualification) 심사를 통과해야만 참여가 가능하다. 그런데 국내 건설사 중 PQ 자격 보유 건설사는 이번에 담합에 참여한 28개사가 전부다. 공정위 정중원 상임위원은 “최저가 낙찰제 특징상 28개 건설사 중 1개사만 담합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담합이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건설사들이 얼마나 견고한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건”이라고 말했다.
◇리니언시 폐해 논란=삼성물산은 28개사 중 가장 많은 835억8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1-2공구 담합 예처럼 삼성물산은 담합을 사실상 주도했다. 그러나 지난 4월 삼성물산은 1순위로 담합사실을 자진신고(리니언시)했다. 현행 규정상 리니언시 1순위는 과징금 100%와 검찰고발이 면제된다. 담합을 주도하고 자진신고를 통해 불이익을 받지 않는 리니언시 제도의 부작용이 또다시 드러난 것이다. 나머지 건설사들도 법정관리 등을 이유로 과징금을 경감 받았다. 금호산업, 삼부토건 등 워크아웃 중인 건설사들은 과징금이 면제됐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호남고속철 공사 ‘사다리타기’로 나눠먹었다
입력 2014-07-28 0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