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일 전, 세월호 참사 후 초·중·고생 자녀를 둔 대한민국의 상당수 부모들은 헷갈려서는 안 될 사안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자녀에게 단체여행 때 위급 상황이 닥치면 책임자의 지시를 잘 따라야 한다고 가르쳐야 할지, 아니면 책임자 지시는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판단해 행동하라고 말해야 할지. 여객선이나 항공기에서 긴박한 사태가 벌어지면 선장이나 기장의 명령에 순응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허물어진 것이다. 배가 침몰하는 와중에 고교생을 비롯한 승객들에게 선실에 가만히 있으라고 해놓고 자신들만 도망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의 비루함 탓이다.
시간이 흐르면 그 불신은 가라앉을 줄 알았으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도무지 믿기 힘든, 너무나 소설 같은 황당한 일들이 도처에서 발생하면서 ‘믿을 사람이 없다’는 불신은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100여일 전의 불신은 더 크고 견고한 불신의 전조(前兆)였던 셈이다.
최근의 유병언 시신 파문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유씨를 놓쳤던 전남 순천 송치재 휴게소 별장에서 불과 2.5㎞ 정도 떨어진 매실 밭에서 변사체가 발견됐음에도 경찰이 행려병자로 처리하는 바람에 40여일 허송세월했다. 밀항에 대비해 해군 함정까지 동원하는 법석을 떨면서 그 변사체가 유씨일지 모른다고 의심한 경찰은 한 명도 없었다. ‘부검한 뒤 유족에게 시신을 인도하라’고 지휘한 순천지청 검사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러자 유씨 시신을 둘러싼 의혹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부실수사에다 국과수가 유씨 사인을 판명해 내지 못하자 SNS 등을 통해 이런저런 괴담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시신이 있던 자리만 풀이 말라 있던 것을 볼 때 지난겨울부터 시신이 놓여 있었을 것’이라든가 ‘유씨 검거에 실패한 검·경이 죽은 행려병자를 매실 밭에 던져놨다’ 등. 그러면서 ‘3개 중립국가에 DNA 검사를 다시 의뢰해야 할 것 같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여기에 일부 야당 정치인들이 가세해 유언비어는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상태다.
검·경을 비롯한 정부가 원인 제공자임은 물론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미숙한 대응에 대한 문책은 왜 그리 더딘지, 세월호를 계기로 드러난 관피아의 적폐는 제대로 해소되고 있는 건지, 재난대응 시스템 구축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건지, 세월호 이후 안전사고는 왜 그리 많이 터지는지 국민들을 불안하고, 허탈하게 만드는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부로부터 과연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되고, 나아가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고 공공연히 얘기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건 당연지사다.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이라 했다. 정부는 신뢰 회복에 전념해야 한다. 말보다는 적극적인 실천이 중요하다. 국민 안전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책임소재를 조속히 가려내 문책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낡은 관행들을 하나하나 일신해 나가야 한다. 구성원들 간의 신뢰는 공동체 유지의 필수조건이다. 역으로 말하면, 강고한 불신은 공동체 의식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불신의 확산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불신사회를 신뢰사회로 바꾸려면 국민들의 협력도 절실하다. SNS에서의 허위사실 유포는 위험 수위에 다다른 느낌이다. 분노와 상실감이 크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와해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비난하고 헐뜯으면 당장 마음이야 풀릴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를 더욱더 멍들게 하고 쇠퇴시킨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세월호 참사는 오랜 기간 곪을 대로 곪은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터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의 책임 또한 작지 않다는 얘기다. 악의를 갖고 불신을 조장하는 행위는 자제돼야 한다.
우리 모두가 풀어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는데, 우리끼리 손가락질해대는 불신사회가 장기화될 경우 어떻게 될까. 생각하기도 싫다. 너무 암울하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
[김진홍 칼럼] 無信不立이라 했거늘
입력 2014-07-28 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