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손병권] 미국의 이민정치와 공화당

입력 2014-07-28 02:08

미국은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다. 미국인들이 ‘인디언’을 ‘토착 미국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지금의 유럽계 미국인들 역시 자신들이 원래 토착 미국인이 아니라 유럽 이민자의 후손임을 자인하고 있는 셈이다.

익히 알려져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 영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최초로 정착지를 개척한 이후 미국의 이민역사는 시작됐다. 이어서 식민지시대와 독립과정을 거치고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유럽계 이주자가 늘어나더니, 남북전쟁 이후 북부 중심의 산업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은 더욱 빠른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들 유럽계 이주민들은 도시를 중심으로 정착한 후 미국 사회에 동화되면서도 독특한 민속집단의 전통을 이어가면서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시기까지 왕조적 억압과 전쟁국가적 강력정치가 지배하는 유럽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은 풍부한 노동력과 창의적 브레인, 그리고 문화적 풍요로움을 미국에 불어넣어 주었다. 이주민들이 기여한 미국의 빠른 산업화, 연구와 개발의 비약적 발전, 문화적 흡인력 제고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 자유진영의 맹주가 되게 하는 데 일조했다. 문제는 20세기 중반 이후 아시아계 이민의 증대에 이어 20세기 말부터 남미의 이민이 증가하자 이제는 이민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한 데 있다고 보인다.

사실상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미국은 대륙횡단철도에 수많은 중국인 이주노동력을 동원한 이후 캘리포니아와 대도시 등을 중심으로 중국계 이민이 증가하자 이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었다. 이어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아시아계 이민이 증가하자 다시 이를 제한하는 정책을 실시했고, 최근에는 남미에서 이민이 증가하자 또다시 제한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일련의 이민제한 정책은 클린턴 행정부의 글로벌화 정책 이후 이민 허용의 기준을 가족의 재결합에서 미국이 필요한 고급인력의 확보라는 차원으로 전환하면서 시작됐다.

국가적 관점에서 취해진 이러한 타국의 이민정책을 왈가왈부할 이유는 없지만, 문제는 남미 이민자의 경우 경제적 필요에 따라서 눈감아 들여왔으면서도 이제는 불법 체류자가 증가하자 충분한 완충적 조치 없이 이들을 내보내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 문제에 대해 공화당은 별 할 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즉 미국 내 제조업 부문 인건비가 높아지고 농작물 등에 대한 계절수확노동자 부족현상이 생기면서 미국의 산업계는 경제적 필요에 따라서 남미의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불법이민을 묵인해 왔지만,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보수주의자 입장에서 보면 9·11사태 이후 남미의 불법이민은 그 자체로서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산업 부문과 보수주의자들이 대체로 공화당을 지지하는 세력이어서 같은 정당 내에서도 이견이 존재하는 셈이다.

특히 이미 공화당의 주요 세력으로 제도화된 티파티 지지자들은 2012년 대통령 선거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불법이민에 대해서는 추호도 타협할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의회 내 이민법 개혁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남미계 유권자의 70% 정도는 유화적인 이민정책을 고수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지지했다.

최근 미국 국경을 넘어서 수천명의 남미 어린이들이 불법적으로 건너와 이들의 처리가 문제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긴급히 요구한 37억 달러의 추가예산 요구에 대해서 공화당은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14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티파티가 지배하는 공화당의 당내 분위기를 볼 때 이민에 유화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이민법 개정에 적극적이었던 캔터 원내대표의 경선 패배가 보여주듯 자살적이다. 2016년 대선에서 남미계 이민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공화당의 대선 전략은 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높지만 공화당에는 2012년 대선 실패의 학습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손병권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