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속 두각 나타내는 대학 (상) 건양대] 이론·실무 담당 교수 2명이 동시에 수업 진행

입력 2014-07-28 02:05
건양대 창의융합대학 학생들이 지난 23일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이 대학 강의실은 학생들끼리 노트북을 놓고 둘러앉을 수 있도록 돼 있다. 교수들은 원탁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이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지도하는 방식으로 수업한다. 사진=이도경 기자
충남 논산에 위치한 건양대 본관인 명곡정보관 전경. 건양대 제공
2018년부터 고교 졸업생 수가 대학 정원보다 많아지며 학령인구 감소로 점차 그 폭이 확대돼 2023년쯤에는 16만여명이나 차이가 난다. 정부는 대학 정원 구조조정에 나섰다. 모든 대학을 5개 그룹으로 구분해 극히 우수한 대학에만 자율권을 주고 나머지는 정원을 줄이거나 퇴출시킬 방침이다. 대학가가 온통 비상이다. 살아남기 위한 전략과 차별화 과정을 세우는 게 발등의 불끄기가 됐다. 국민일보는 위기 속에서 '작지만 강한 대학' 두 곳을 소개한다. 탄탄한 실무교육과정으로 유명한 충남 논산의 건양대가 첫 순서다. 전국 70여개 대학이 이 대학 교육 과정을 벤치마킹했다. 취재진이 갔던 지난 23일에도 대구의 한 사립대의 총장과 교직원들이 학교버스를 타고 와 견학하고 있었다.

인천에서 태어나 충남 논산에서 대학을 다니는 민서(가명·여·21)씨는 대학을 다니며 재수를 준비하는 ‘반수’를 고려했었다. 등록금도 저렴하고 잘 가르친다는 담임교사의 권유로 건양대에 입학했지만 비수도권 사립대를 나와 제대로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입학식에 갔지만 대학생활의 설렘이나 친구들에 대한 기대감도 없었다. 수능 공부를 열심히 해 서울에 있는 학교로 옮기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이런 마음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해 서글프다는 생각도 자주 했다.

그러나 첫 학기가 마무리될 무렵 수능 교재를 접었고 현재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를 다닌다. 탄탄한 실무위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취업까지 책임진다는 건양대를 믿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학생의 실무능력을 증진시키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끌렸다. 민서씨는 이 대학에서 보낸 3개 학기를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학습동기 유발로 시작되는 대학생활

민서씨는 다른 대학보다 1주일가량 빠른 2월 하순 입학식을 치렀다. ‘동기유발학기’를 위해 일찍 학사 일정을 시작했다는 대학 측 설명이 있었다. 동기유발학기인 입학 후 첫 4주간 집중적으로 심리성격과 진로적성 검사를 받았다. 외국어능력평가 등을 통해 본인이 외국어 습득에 소질이 있다는 점을 발견해 기뻤다. 또한 앞으로 4년간 배우게 될 커리큘럼을 미리 살펴봤다.

대기업에 취업해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선배들이 학교로 와 경험담을 들려주고, 해당 기업을 직접 방문해 견학했다. 대학 측이 학생을 위해 노력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지만 ‘인(in) 서울’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도권 대학에 간 많은 친구들과 자신을 비교할 때마다 반수에 대한 생각이 옅어졌다. 다른 대학에 없는 강점을 건양대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건양대에서는 실무와 이론을 한 수업에서 가르쳤다. 하나의 수업을 교수 2명이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다. 한 명은 학자의 길을 걸어온 교수, 다른 한 명은 실무에 정통한 대기업 임원 출신이었다.

수업은 팀별로 진행된다. 4∼5명으로 구성된 팀원이 원탁에 둘러앉으면 교수들이 돌며 지도한다. 이 대학이 의료보건 계열과 함께 집중 육성하는 ‘창의융합대학’ 소속인 민서씨는 노트북 컴퓨터를 무상으로 받았다. 프로젝트에 대한 이론을 조원들과 학습한 뒤 노트북에 정리해야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인터넷에는 배워야 할 이론에 대한 정보가 풍부했다. 굳이 수업시간에 학습할 필요가 없었다. 교수들은 사전에 습득한 지식을 팀별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가르쳤다.

커피찌꺼기 화장품을 중국에 수출하라

민서씨는 커피전문점에 쌓인 커피찌꺼기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채택됐다.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 물류비가 싼 화장품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교수 자문 결과 클렌징 크림과 바디 스크럽제가 가능했다. 팀원들은 각자 제품 생산, 해외 마케팅, 유통경로 담당자가 됐다. 민서씨는 중국어 사전을 뒤지며 중국 인터넷 사이트에서 시장조사를 벌였다. 다른 친구들은 유통경로를 구축하고, 제품 단가를 낮추는 방안을 고민했다.

사업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자 수업은 강의실을 벗어났다. 중국 시장에 정통한 교수 자문을 받기 위해 수업시간에 다른 전문가들을 찾아다녔다. 특히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통계프로그램인 SPSS를 써야 할 때가 많았다. 문과 출신인 민서씨에게 통계는 벽이었다. 이 학교 ‘기초학력증진실’을 두드렸다. 수학 화학 물리 등 기초 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한 전담 조직이다. 교수들이 개인과외 방식으로 가르쳐준다. 기초학력증진실은 기숙사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민서씨 팀은 수시로 수학담당 교수에게 전화해 기초학력증진실과 기숙사 중간 지점에서 만났다. 민서씨는 친구들과 밤을 새우며 몰두했고 학기 말에는 완성된 사업보고서가 나왔다. 민서씨는 완성된 날 친구들과의 뒤풀이를 잊지 못한다.

토익 집중학기, 금연·다이어트 장학금

2학년 때는 장학금 사냥에 나섰다. 4년간 등록금 절반을 감면받고 저렴한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욕심을 부려보기로 했다. 친한 남학생은 금연 장학금에 도전하고 있다. 신청 후 10개월 동안 니코틴을 측정해 통과하면 100만원을 주는 장학금이다. 다이어트 장학금도 있다. 비만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6개월 동안 몸무게의 10%를 감량하면 50만원이 나온다. 일정기간 체중을 유지하면 50만원을 추가로 준다. 담배를 피거나 뚱뚱하면 취업에도 영향을 미친다.

H4C 장학금 제도도 독특했다. 인성·봉사(Humanity), 외국어(Conversation), 자격증(Certification), 경진대회(Creativity) 등에서 성과를 내면 장학금을 준다. 민서씨는 지난 학기부터 교내외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마일리지를 쌓고 있다. 적립된 마일리지는 등록금에서 차감된다.

올해는 토익 800점에 도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번 여름방학 때 ‘토익몰입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1개월간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강의를 듣고 오후 9시쯤 마무리되는 강행군이다. 참가비는 90만원으로 비싸지만 160∼200점 오르면 전액 환급해준다. 환급금은 상승한 점수, 시작한 점수대별로 차이가 있다.

지역 명문을 벗어나 전국구 명문으로

건양대 교육과정은 교육부로부터 호평을 받는 혁신적인 프로그램이다. 건양대는 올해 7.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학부교육 선도대학(ACE)에 선정됐다. ‘잘 가르치는 대학’으로 불리는 교육부 재정지원 사업으로 우수한 학부 교육 시스템을 갖춘 대학이 대상이다. 2010년 첫 사업에 선정된 뒤 2013년까지 재정지원을 받은 뒤 재평가 과정을 거쳐 또다시 선정됐다. 이런 대학은 전국적으로 성균관대 등 6개교뿐이다.

기업과의 기술협력이나 학생창업 지원 등 산학협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12년 1단계 산학협력 선도대학(LINC)에 선정됐던 건양대는 지난 5월 평가결과 12개 대학만 획득한 최고등급인 ‘매우 우수’를 받고 2단계 사업에 선정됐다. 올해 처음 선정된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에도 뽑혔다.

특히 올해 발표된 지방대 특성화사업은 정부가 대학구조개혁을 염두에 두고 추진했기 때문에 많은 대학들이 심혈을 기울였다. 건양대는 대전 메디컬 캠퍼스 특성화 3개 사업단, 창의융합캠퍼스 특성화 4개 사업단 등 7개가 지원해 모두 선정됐다.

이동진 건양대 대외부총장은 “2000년대 중반 대학개혁을 본격화했고 현재 궤도에 올라 다른 대학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경쟁력의 핵심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대처하는 교수진”이라며 “개혁 초기 김희수(86) 총장이 교수들을 변화와 개혁에 동참시키기 위해 1대 1로 진지하게 설득한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논산=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