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부검 결과] 유병언 죽음, 결국 미궁으로… 국과수 “시신 너무 부패” 死因규명 실패

입력 2014-07-26 02:07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을 정밀 감식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인을 규명하는 데 실패했다. 검·경의 부실한 초기 대응으로 시신을 늦게 발견한 데다 변사 처리가 지연되면서 크게 훼손된 탓이다. 세월호 참사의 완벽한 책임 규명을 위해서는 유씨의 사망 경위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 이제 저인망식 총력 수사로 유씨의 마지막 행적을 찾아내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 유씨 수사 과정 내내 체면을 구겼던 사정 당국은 신뢰 회복을 위해 수사팀을 재정비하고 유씨의 말로를 규명해야 한다.

지난 22일부터 유씨 시신 정밀 부검에 착수한 국과수는 외력에 의한 외상사, 질식사, 독극물 등의 중독사, 질병에 의한 급사 가능성을 면밀히 조사했다. 그러나 독극물에 따른 사망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 외에는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서중석 국과수 원장은 25일 이례적으로 언론 브리핑을 갖고 “시신의 부패가 심해 사망 원인을 판명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시신 발견 이후 벌어진 검·경의 부실한 초동 대응이 유씨의 사망 경위를 밝혀낼 마지막 ‘열쇠’마저 무용지물로 만든 셈이다. 서 원장은 다만 ‘시신을 바꿔치기했다’는 등의 의혹과 관련해 “이 시신에서 채취한 모든 DNA가 유씨의 것과 일치했다. 이 시신이 유씨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며 일축했다.

유류품 조사에서는 유씨의 행적을 보여줄 단서가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시신 주변에서 발견된 소주병과 스쿠알렌병에서 유씨의 유전자가 검출됐다.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 유씨가 이 소주병을 들고 다녔으며 스쿠알렌 역시 직접 복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스쿠알렌병 등은 유씨가 머물렀던 순천 은신처에서도 다수 발견됐다. 유씨의 도주 경로를 추적할 주요 단서인 셈이다.

유씨의 목뼈 1개가 사라진 사실도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시신 발견 현장에서 목뼈를 주웠다는 사람이 나타나 접촉 중”이라며 “뼈를 돌려받는 대로 국과수에 보내 감식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과수는 이제 유씨의 옷에 대한 후속 검증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국과수 검사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유씨 일가 수사도 난관에 부닥쳤다. 사정 당국은 전방위적인 저인망 수사를 통해 유씨 행적 추적에 나섰다. 검찰은 최근 사임한 최재경(51·사법연수원 17기) 전 인천지검장 대신 강찬우(51·연수원 18기)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을 인천지검장 직무대리로 발령해 유씨 일가 수사를 지휘토록 했다.

경찰도 시신 발견 장소 일대에 대한 광범위한 정밀 수색에 착수했다. 인근 도로변이나 개인 시설의 CCTV를 살펴보고 사설 경비업체 등을 탐문해 유씨가 혹시 도피 중 민가에 들어간 흔적 등을 조사하고 있다. 유씨와의 연관성이 입증된 스쿠알렌병이나 육포 등에 대한 수색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또 수사가 종료될 때까지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하지 않기로 했다.

이날 오전에는 유씨의 친인척이 시신 발견 장소에 찾아가 둘러봤다. 유씨 시신을 처음 발견한 농부 박모(77)씨는 “최근 경찰로부터 구원파가 유씨 시신이 발견된 땅을 사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들이 적정한 가격을 제시하면 팔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순천=황인호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