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사인을 찾으며 외상사, 질식사, 중독사, 질병에 의한 내인성 급사 등 네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정밀부검 결과 네 가능성이 모두 배제되면서 ‘사인 판명 불가’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국과수 부검 결과를 검증한 가톨릭대 법의학과 강신몽 교수는 25일 “부검을 통해 사인을 밝히지 못한 상황에서 여러 정황을 종합한 ‘최선의 추정’은 저체온사”라고 말했다.
◇외상·질식 흔적 없어=부검의들은 먼저 외부 압력에 인한 타살을 의심했다. 시신 발견 직후 머리와 목이 분리돼 살인 의혹이 제기됐었다. 실제로 유씨 시신에서 가장 많이 훼손된 부위도 목이었다. 국과수가 시신을 인수할 당시 목뼈 7개 중 3개가 없었다. 이후 시신 발견 현장에서 2개를 찾아 1개가 분실된 상태다.
하지만 감식 결과 외상사나 질식사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한영 중앙법의학센터장은 “목뼈에 강한 힘이 작용했다는 증거가 없고 다른 신체 부위에서도 골절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이 센터장은 “목에는 갑상연골·설골 등 부드러운 연골이 있는데 외력이 가해지거나 목을 졸라 질식하게 되면 쉽게 부러진다. 유씨 시신에선 연골 골절이 관찰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다만 “목에 피부 등 연조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외력이 없었다고 확신하긴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독극물 중독, 질병 흔적도 발견 못해=국과수는 이어 시신의 간과 폐, 근육에서 조직을 떼어내 시료 검사를 실시했다. 1차 부검에서 특별한 외상이 없어 약물중독 가능성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일반 약물, 독극물, 마약류, 알코올, 케톤(당뇨 진단 지표) 성분을 검출해본 결과 다섯 가지 모두 ‘음성’ 반응이었다. 간에서 극미량의 알코올 성분이 검출됐지만 국과수는 “일반적으로 시신이 부패할 때 미량의 알코올이 검출되는데 유씨 시신에선 그보다도 적은 양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소주병·막걸리병 등 현장에서 발견된 유류품 8점에서도 독극물은 검출되지 않았다. 질병으로 인한 급사 여부도 판명할 수 없었다. 이를 파악하려면 심장 등 장기를 검사해야 하는데 유씨 시신은 가슴과 복부의 주요 장기가 모두 심각하게 훼손된 터라 검사 자체가 불가능했다.
◇‘실마리 없는 시신’…저체온사 가능성=이 센터장은 유씨 시신을 ‘실마리 없는 시신’이라고 표현했다. 사인을 밝혀줄 증거가 나오지 않아 유씨 행적과 사망 현장 등 정황이 더욱 중요해졌다. 브리핑에 참석한 강 교수는 “부검으로 사인을 밝히는 데 실패했더라도 부검 데이터와 현장 단서를 조합해 ‘최선의 추정(Best Guess)’은 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저체온사 가능성을 제시했다.
강 교수는 “유씨 시신 주변은 저체온사에 아주 합당한 현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5월 말∼6월 초의 따뜻한 날씨였지만 비가 내려 옷이 젖은 데다 야간에 기온이 떨어지면 저체온증이 나타난다”며 “유씨가 고령에 허기진 상태로 야간 저온에 노출돼 사망에 이르지 않았겠느냐는 추정은 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저체온사 시신 중에는 인근에 옷가지를 벗어놓고 나체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며 유씨 시신의 신발과 양말이 벗겨진 것도 저체온사 시신에서 자주 나타나는 ‘이상탈의’ 현상으로 추정했다. 서중석 국과수 원장은 이에 대해 “저체온사 가능성도 있지만 다른 가능성 역시 매우 많다”며 속단을 피했다.
◇국과수, 이례적 브리핑=국과수가 직접 언론 브리핑을 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국과수 감정 결과는 원칙적으로 의뢰한 수사기관에만 제한적으로 통보돼 왔다. 유씨 사인에 대한 의혹과 수사기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터라 국과수가 직접 나서서 이를 해소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국과수는 브리핑 중 많은 부분을 할애해 ‘발견된 시신이 유씨가 아니다’ ‘1·2차 부검 때 시신이 바뀌었다’ 등의 의혹에 적극 반박했다. 1·2차 부검 당시 치아와 두개골 사진, 치과 진료 기록 등을 제시하는 한편 유씨의 왼쪽 손가락 절단 부위도 X선 사진으로 공개하며 “유씨 시신이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유병언 부검 결과] 타살·독극물 등 흔적없어… “저체온사 가능성” 제기
입력 2014-07-26 14: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