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희(45·여·안산 화정교회) 전도사를 처음 만난 건 지난 21일이었다. 세월호 유가족인 박 전도사는 이날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가 개최한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기감 본부를 찾았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그는 행사가 시작되자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고가 일어난 지 100일이 다 돼 갑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진실은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언론이 사실을 왜곡해 보도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유가족이 가장 힘들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바로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어딘가에 고립돼 버린 느낌을 받을 때입니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인터뷰를 요청하니 박 전도사는 이틀 뒤에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약속한 23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호로 부곡사회종합복지관에서 박 전도사를 인터뷰했다. 그를 포함한 유족들은 세월호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두고 안산에서 서울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100리 행진’을 벌이고 있었다. 그를 만난 부곡사회종합복지관은 ‘100리 행진’의 기착지 중 한 곳이었다.
“걸으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그동안 저만 바르게 살면 하나님도 기뻐하실 거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이것이 최고의 선(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사 이후 심한 고립감을 느끼면서 그동안 이웃에 대한 사랑,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하나님의 ‘이웃사랑’을 지금까지는 소극적으로 해석했던 겁니다.”
박 전도사는 세월호 참사로 딸 유예은(17)양을 잃었다. 예은이는 단원고 2학년 3반 학생이었다.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성격이 밝은 아이였다. 예은이는 아이돌 그룹 빅뱅과 투애니원을 좋아했고 장래 희망이 가수였다. 박 전도사는 “옛날엔 집에 가면 항상 예은이가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딸의 노래를 들을 수 없게 됐습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딸을 잃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신앙이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없어요. 오히려 신앙의 폭이 넓어진 기분이에요.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성경 말씀을 뼈저리게 깨달았거든요. 예수님이 느꼈을 외로움과 고통도 조금은 실감하게 됐고 전도사로서의 사명감도 더 커졌습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보낸 지난 99일. 그 시간을 더듬는 일 자체가 박 전도사에겐 아픔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99일이 당신에게 어떤 시간이었는지 야멸찬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세월호 유가족의 시계는 여전히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에 멈춰 있어요. 나처럼 다른 유족들 역시 앞으로 고통 받는 이웃을 도우며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는 20여분 만에 끝났다. ‘100리 행진’이 다시 시작되려고 하자 박 전도사는 황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망연히 그의 뒷모습을 보는데 그가 입은 티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티셔츠에는 ‘별들과의 동행’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저 하늘에 별이 됐을 아이들을 기리는 문구 같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박 전도사의 남편 유경근(44)씨의 페이스북에 들어가 봤다. 유씨는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에서 대변인을 맡고 있다. 그가 지난 99일 동안 페이스북에 남긴 문장들에서는 딸을 향한 진한 그리움이 묻어났다.
“예은이의 영정 아래 누웠습니다. 다만 몇 시간이라도 자야겠기에. 그런데 예은이가 혼자 빈방에서 외롭고 무서울까봐 (걱정입니다). 예은이는 이미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4월 27일)
“고기를 먹어야겠습니다. 예은이가 정말 좋아하던 고기를. 삼겹살, 돼지갈비 한 점에도 감사와 감탄을 연발하던 예은이를 만져보고 싶어요.”(5월 11일)
“혼자 울면 눈물 한 방울이지만 함께 울면 거대한 강물입니다.”(7월 23일)
안산=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세월호 100일, 한국교회 어떻게 응답했나] (3·끝) 크리스천 유가족의 기도
입력 2014-07-25 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