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장마가 계속된다. 도심은 32도를 오르내린다.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이런 때일수록 바다가 그립다. 에메랄드빛 바닷물에 달려가 풍덩 빠지고 싶은 나날이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마음이 바쁜 탓인지 여유가 없어서인지 좋아하는 바다를 향해 걸음을 떼기가 쉽지 않다. 바다에 가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너른 바다를 보면 가슴이 트이고 출렁거렸던 마음이 시나브로 가라앉는다. 전에는 동해안을 가야만 수평선을 볼 수 있었는데 이젠 인천 방면이나 서해안에 가도 수평선을 쉽게 접할 수 있어 도로의 발달이 고맙기도 하다.
내 집 창가에 방석 두 개의 넓이로 모포가 펴 있고, 그 위에 기도의자가 놓여 있다. 그 앞 작은 교자상에는 성경책, 십자가, 전기 없던 시절 사용하던 호롱이 자리 잡고 있다.
삶이 고단하여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조용히 나 홀로 마냥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도 하다. 나만의 바닷가에 가고 싶을 때마다 창가의 모포 위로 나간다.
마음이 울적해질 때, 할 일이 있는데 집중은 안 되고 제 자리 걸음 할 때, 당면한 현안에 대해 이렇다 할 생각이 나지 않아 답답하고 조바심에 사로잡힐 때, 심란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할 때 나만의 바닷가로 향한다.
부당한 외부 영향력이 억울하나 감수할 수밖에 없을 때, 월세를 착실히 내던 송파의 세 모녀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작년에 매일 75명이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데 성공했다(?)는 기막힌 소식을 접하면서도 그런 이웃을 바라보기만 하고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에 가슴이 아릴 때, 다른 길이 없어 오직 먼 하늘을 바라볼 수밖에 없을 때 자리를 박차고 나만의 바닷가로 달려간다.
나만의 장소로 달려가 무릎 꿇는다. 주님 앞에 마음을 펼쳐 보이며 보듬고 있는다.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하나님 앞에(coram deo) 내려놓고 맡겨 드린다. 어떻게 기도할 바를 몰라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롬 8:26) 기도해 주시는 성령님께 온 힘을 실어드리는 마음으로 나만의 바닷가에서 두 팔 벌려 엎드려 있는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 46:10)의 말씀이 가슴에 새겨질 때까지 침묵 속에 기다린다.
그러노라면 수평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멀리 있던 바다가 가까이 와 있는 듯하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다독거려진다. 아무런 느낌 없이 바닷가에서 현실로 돌아온 적도 많다. 그렇게 속을 끓이던 일이 바닷가에서 돌아온 후 저만치 떨어져 있어 보일 때는 내 눈을 의심하기도 한다.
바닷가에서 돌아오면 일상은 여전히 물결이 출렁인다. 물결과 물보라에 마음이 또 흔들리기도 한다. 그래도 물결은 물결일 뿐이다. 그 물결 밑의 바다는 흔들리지 않고 고요하리라. 그래서인지 마음이 지난번보다 덜 흔들린 듯하다. 어쩌다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볼을 시원하게 스치며 더위는 어느 새 저기 가 있다. 나만의 바닷가에 다녀오면 뭔가 다르다. 얼마 전에 다녀왔는데도 나는 여전히 ‘그대가 그립다’.
권명수 교수(한신대 목회상담)
[시온의 소리-권명수] 나만의 바닷가
입력 2014-07-25 0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