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과 영성] 마음의 쉼표, 안식… 그분과 동행할 새 길을 보았습니다

입력 2014-07-26 02:11
경기도 가평 필그림하우스에 있는 산책로 ‘천로역정 이야기’ 한쪽으로 표지판이 보인다. 이 길은 ‘순례자, 당신의 이름은 크리스챤’이라는 안내로 시작된다.
필그림하우스 안에 있는 기도실.
산책로 안내 표지판 ‘천로역정 이야기’.
언제부턴가 “네 인생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10, 9, 8, 7, 6…”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직업적 전환을 뜻하는 이야기로 여겼다. 그러다 성경 묵상을 통해 그것을 믿음의 비본질에서 믿음의 본질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우리가 믿음이라고 여기며 행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믿음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었다. 나의 믿음생활이 그랬고, 내가 지켜보았던 한국교회의 현실이 그랬다.

하나님과의 만남, 즉 임재가 종교성으로 대체됐다. 믿음은 이상(理想)이 되었고, 소망은 소유로 변해 버렸다.

이후 개인적으로 ‘더 깊게’ 들어가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란 중력은 언제나 나를 감싸고 있었다. 중력에 저항하며 더 높이 날아오르기란 쉽지 않았다. 갈망, 사모함은 재산이었다. 그러나 갈망만으로는 부족했다. 시간이 없기에. 갈망만 품고 이 세상을 떠날 순 없는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수술을 받으면서 새삼 ‘시간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007년 1월 16일. 안면신경 마비로 인해 생전 처음 4시간 반 동안 수술을 받았다. 당시 내 나이 46세. 수술대 위에서 ‘가던 길 멈추고 정지하며, 참된 안식을 누리는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 몸에 힘이 느껴졌고 다시 돌아간 세상 속에서 은혜가 점차 사라지는 삶을 살게 됐다. 수술대 위에서 느꼈던 절절한 은혜에 대한 갈구도 희미해져갔다. ‘쫓기듯 살지 않겠다’는 다짐도 희미해지면서 영성 작가인 리처드 포스터가 ‘이 시대의 대적(大敵)’이라고 규정한 분주함 속에 또 파묻히게 됐다.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를 위해 던져라

수술대 위에서 ‘이제 다시는 수술 받지 않는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신의 의지에 반(反)한 인간의 의지는 유약할 수밖에 없다. 처음 수술 받은 지 7년5개월 만에 나는 다시 수술대에 눕게 됐다. 2014년 6월 2일이었다.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급성담낭염으로 인한 담낭(쓸개) 절제 수술을 받았다.

인생은 능동태가 아니라 철저히 수동태였다. 50대 초반에 다시 수술을 받게 되면서 이것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수술 이후 분주하게 지냈던 지난 7년여 시간들이 떠올랐다. 이 시대의 모든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 일상과 일생을 충실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일상에 매이고 일생에 매인 세월이었다. 생각해 보니 진정한 휴식을 모르고 살았다. 멀티태스킹이 요청되는 시대에서 몇 가지 일을 동시에 하며 생산을 통해 나의 정체성과 존재 의미를 찾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 육신과 내면은 몹시 지쳐갔다.

담낭제거 수술을 받으면서 새삼 “네 인생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는 말이 다시 생각났다. 시간은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주위에 함께 지냈던 사람들이 급작스레 떠나는 경우도 목격했다. 시간이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비본질’을 떠나 가장 중요한 일에 인생을 투자해야 했다. 더 이상 곡선 인생을 살 수 없었다. 무언가 하는 듯했지만 먼지처럼 사라진 인생을 산 사람들을 무수히 보았다. 나도 그렇게 살 가능성이 컸다. 시간이 없다고 느껴질 땐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 직선 인생을 살아야 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고 예후는 좋았다. 수술 후에 경기도 가평의 기독교영성센터인 필그림하우스에 1주일 동안 머물렀다. 영혼의 쉼을 누리고 침묵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곳이다. 마침 ‘하나님의 모략’ ‘하나님의 음성’ 등을 쓴 고 댈러스 윌라드 박사 기념 방이 배정됐다.

금세기 복음주의 지성 가운데 한 명인 윌라드 박사는 지난해 5월, 암 투병 끝에 77세를 일기로 이 땅을 떠났다. 윌라드 박사 기념 방에는 그의 생전 모습과 핸드프린팅이 된 액자가 걸려 있었다. 난 윌라드 박사를 한국과 미국에서 여러 차례 인터뷰했었다. 그는 내가 만난 최고의 인터뷰이(interviewee)였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나의 질문에 그는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라고 답했다. 윌라드 박사는 “목사는 자신이 속한 도시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그 행복의 이유를 사람들에게 말해줘야 한다”고 했다.

윌라드 박사의 방에서 인생은 유한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동시에 유한한 인생 속에서 ‘불멸의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있음을 생각했다. 그동안 저널리스트로 일하면서 수많은 믿음의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이 내게 했던 모든 이야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어떤 것일까? ‘예수를 위해 살고, 예수를 위해 던져라’였다. 그럼, 누가 예수를 위해 살 수 있는가. 예수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이다. 누가 중력을 거부하며 던지는 삶을 살 수 있는가. ‘던져도 결코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다.

애굽 시스템에서 왕국 시스템으로

믿음의 거성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고 느꼈을 때 언제까지나 그들의 이야기만 전달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 인생의 카운트다운이 엄숙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 카운트다운 속에서 벼락같은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네 차례는? 이젠 네가 던질 차례란다. 깊은 데로 가거라.”

생각해 보니 그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나 역시 부르심을 받았고, 이 땅에 보냄 받은 자였다. ‘안식’을 쓴 마르바 던은 말했다. “삶에 있어서 나의 책임은, 나의 창조자와 그분의 뜻을 사랑함으로써 나를 창조하신 목적에 가능한 한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마음자리가 문제였다. 나를 창조하신 그분의 목적에 충실하게 살고 있다면 고민할 필요 없었다. 그러나 난 고민했고 더 깊게 들어가고 싶은 갈망이 있었다. 내 인생에서 한 번이라도 중력을 거부하며 던지는 삶을 살고 싶었다. 26년 동안 행복하게 다녔던 회사를 정리했다. 지나온 다리를 감사함으로 불태웠다. “네 인생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는 그 음성에 반응하는 시작은 나의 관성을 의지적으로 단절하는 것이었다.

내 정체성과 같았던 직장을 ‘던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애굽 시스템’(System of Egypt)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세상 시스템을 벗어나면 망할 것 같은 느낌, 그 중력의 힘이 무서웠다. 그러나 그 애굽의 시스템에서 벗어나야만 ‘왕국 시스템’(System of Kingdom)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필그림하우스에는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경험할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해석자’란 문패가 마음에 와 닿았다. “하나님은 절대로 선하시다”는 윌라드 박사의 말을 믿으며 ‘새롭고 산 길’을 걸어가련다. 그리고 짧은 인생 속에서 내 삶의 궁극적 해석자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그분을 위해 살고 싶다. 이것이 내가 병상과 필그림하우스에서의 안식을 통해 얻은 교훈이었다. 주의 율례를 알게 해줌으로써 질병은 오히려 기막힌 은혜가, 안식은 내게 임한 창조주의 목적을 생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이태형 전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