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규 교수의 바이블 생명학] 새 생명을 소유하셨습니까?

입력 2014-07-26 02:25

1953년 10월 1일 오전 5시15분, 의사는 사내아이를 받았다. 핏덩어리에 붙어 있는 탯줄 두 군데를 겸자(鉗子)로 잡은 다음 그 사이를 수술용 가위로 잘랐다. 신생아는 무엇이라고 소리쳤으나 산모에게는 울음소리로 들렸다. 어느 순간이라고 할 수 없는 사이에 신생아는 최초의 들숨을 들이쉬었고 또 최초의 날숨을 내쉬었다. 산모와 완전히 분리된 독립된 생명체가 탄생하였던 것이다. 얼마 후 그 아이에게 박철수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어느 날, 갓 대학생이 된 박철수 학생은 전혀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렇게 포근하고 감미로운 봄날은 처음이었다. 새들이 지저귀는 것이 아니라 정말 노래하고 있었다.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모든 것이 자신을 향하여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특별한 것은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기쁨이었다. 그 기쁨은 전에는 한 번도 체험한 적 없었던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그는 말할 수 없는 행복감에 휩싸였다. 세상이 어제와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바뀐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실 세상은 바뀐 게 없었다. 바뀐 것은 스무 살 청년 박철수가 바뀐 것이었다. 그가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고 말씀하셨다. 이 거듭남의 가르침은 이론적인 것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신생아의 출생처럼 거듭남 역시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듭난 사람이 가지게 된 생명은 신생아의 그것과 다른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 거듭남이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받은 생명은 다르다. 생명의 기원, 그 뿌리가 전혀 다르다. 신생아 박철수의 생명은 그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러나 거듭난 박철수가 받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 박철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이다. 그러므로 거듭난 박철수가 받은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생명은 실체가 있고 실재하는 것이기에 그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새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생명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당신은 거듭난 사람인가? 이 ‘새 생명’을 가지고 있는가? 자신이 새 생명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새 생명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새 생명의 인지 혹은 인식은 믿음의 여부보다는 경험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존재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즉 생명 있음을 본능적으로 안다. 이와 비슷하게 거듭난 사람은 자기 속에 새 생명이 있음을 안다. 박철수 학생처럼 거듭난 경험을 해 보아서 안다.

이 새 생명에 대하여 우리가 경험한 것을 더 나누어 보자. 우리가 죄를 범했을 때 질식사할 것 같은 숨막힘과 고통을 느낀다. 이러한 체험은 육신의 생명이 위협을 받아서가 아니라 새 생명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죄가 반복되고 습관화되면 이러한 절박한 질식감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매우 위험한 신호이다. 새 생명의 생명력이 심각한 위축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새 생명이 가진 생명력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정도라면 그 사람에게서 그리스도인의 생기와 활력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는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죽은 것이다.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으로, 육의 사람과 방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거듭난 사람이라면 우리 속에 새 생명이 존재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귀한 생명을 잘 간수하는 것이다. 그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이는 질그릇 속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는 오물(汚物)을 버리고 그릇 안쪽 깊숙한 곳에 붙어 있는 시꺼먼 때를 씻어내는 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 일에 주의 보배로운 피는 여전히 유효하다.

김덕규 교수 <동아대 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