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진] 당신과 내가 만난다는 것

입력 2014-07-25 02:47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기 전날 밤, 모두 앞에서 정현종의 시 ‘방문객’을 읽었다. 가슴속에 애틋함이 더해진 탓인지 문득 광화문 한복판에 걸려 있던 이 시가 떠올랐다. 조금 들뜬 분위기이긴 했지만, 시어 하나하나가 울려 퍼지던 순간 우리는 진지하게 시의 의미를 음미하며 눈빛을 나누었다. 내 앞엔 열아홉 명의 일생이 형형색색 춤을 추고 있었다.

얼마 전 1년 동안 함께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분들과 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되었다.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나는 중간에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한 달도 안 돼 다시 볼 것을 뻔히 알면서도, 송별을 위해 둥그렇게 둘러 선 이들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나 역시 영영 헤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 눈이 빨개지며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애틋했던 것은 아니다. 낯선 땅에서의 긴장된 시간 속에 꽁꽁 담아두고 있던 민낯의 너와 내가 드러나며 삐걱거리고, 제각각 모양이 다른 생활의 모서리를 맞추느라 애써야 하는 순간들도 많았다. 치유와 성장을 위해 모였지만 각자의 목적과 삶의 표현 방식들은 미세하게 각이 달랐다. 그러니 속으로 나와 같지 않은 생각과 행동을 탓하기도 수차례였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이 단순히 한 공간에 머무는 일이 아님을 우리는 배워나갔다. 서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온몸으로 만나는 어마어마한 일이란 사실을 깨우쳐 갔다. 지난 1년보다 더 깊게 온 존재로 만나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쉽지 않고 단순할 수 없는 시간이다. 어쩌면 눈물은 그 농밀한 배움이 준 선물이었는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인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가족이든 친구이든 연인이든 우리가 만나고 스쳐가는 모든 인연들이 각자의 일생과 함께 다가온다. 거대한 산처럼 우리 앞에 온 존재로 우뚝 선다. 그럼에도 내 조그만 손바닥으로 그 산을 가리고 재단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한 걸음 올라보기도 전에 높고 낮음을 판단하고, 변화무쌍한 산맥을 함부로 가늠해버리곤 한다. 이 터무니없는 오만함을 떨치고 관계 속에서 성장하기 위해, 우리에겐 있는 그대로 보고 기꺼이 그 시간을 감내할 용기가 가장 먼저이다.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