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의 송치재휴게소 뒤편 '숲속의 추억' 별장을 은신처로 택한 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자신이었다. 검찰은 23일 그간의 수사 상황을 공개하며 "유씨가 5월 3일부터 직접 선택한 이 별장에서 장기 은신 체제에 돌입한 것 같다"고 밝혔다.
휴게소 주인 변모(61)씨 부부는 "금수원과 추모(60·순천지역 구원파 간부)씨로부터 '대균씨(유씨 장남)가 간다'는 연락을 받고 별장을 치워놨는데 유씨가 측근 5명과 함께 나타났다"고 진술했다. 유씨는 이곳에 숨어 지내다 5월 25일 급습한 검찰을 따돌린 뒤 행방을 감췄고, 6월 12일 2.5㎞ 떨어진 매실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검찰이 유씨 구속영장을 들고 순천에 내려간 건 5월 22일이었다. 통화 내역을 추적해 확보한 단서가 있었다. 24일 밤 추씨를 체포하고, 25일 오전 1시20분 휴게소를 급습해 2시간 가까이 압수수색을 벌였지만 유씨는 없었다. 검찰은 25일 오후 4시쯤 체포한 이들에게서 "유씨를 별장에서 봤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즉시 별장에 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서 오후 9시30분부터 수색을 벌였다. 별장에 있던 여비서 신모(33)씨는 "미국 국적 구원파 신도"라며 영어로 횡설수설하더니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검찰은 오후 11시20분 수색을 마치고 신씨를 체포해 인천으로 돌아갔다.
약 2시간 동안 검찰이 별장을 수색하는 사이 유씨는 2층 통나무벽 뒤 밀실에 숨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신씨는 체포 직후 "25일 새벽에 낯선 남자가 별장에 와서 유씨와 얘기를 나눴고 자고 일어나보니 둘 다 사라졌다"고 주장하다 6월 26일 진술을 번복해 밀실의 존재를 털어놨다.
화들짝 놀란 검찰이 6월 27일 별장에 내려갔더니 정말 밀실이 있었고 돈가방 2개가 나왔다. 검찰은 5월 25일 압수수색을 마치며 이 별장에 별다른 감시 조치를 하지 않은 채 그냥 내버려뒀다. 이튿날 전남경찰청에 의뢰해 오후 3시부터 정밀감식을 했지만 그때도 밀실은 찾지 못했다.
유씨는 검찰이 압수수색을 마친 5월 25일 밤 11시20분부터 경찰이 정밀수색을 시작한 26일 오후 3시 사이에 밀실에서 나와 별장을 빠져 나갔을 가능성이 크다. 거액이 든 돈가방을 남겨둬야 했을 만큼 다급하게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 근처 야망연수원에 있던 운전기사 양회정(56·수배)씨는 검찰이 휴게소를 급습한 25일 새벽 이미 쏘나타를 몰고 전주로 달아난 뒤였다. 신씨, 추씨, 변씨 부부 등 주변 신도들이 모두 체포된 터라 유씨 혼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검찰이 철수한 직후 별장을 나섰다면 밤중에 산길을 이동해야 했을 상황이다. 시신이 발견된 매실밭까지는 하천이 이어져 있다. 이를 따라 이동하거나 더 험한 바랑산 쪽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다. 이런 정황은 70대 노인이 혼자 산길로 도주하다 변을 당했으리란 추론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안경, 지갑, 휴대전화, 신분증 등이 사라지고 반듯하게 누운 자세로 숨진 상황까지 설명되진 않는다. 밀실에서도 이런 소지품은 발견되지 않았다. 돈가방 2개 중 하나는 지폐로 꽉 찬 다른 가방과 달리 빈 공간이 있었다. 일부 현금이 누군가에 의해 사라졌을 가능성도 배제키 어렵다.
경찰은 이날 뒤늦게 별장 압수수색을 다시 벌였다. 유씨가 먹었던 걸로 추정되는 물과 과자 등 48점을 확보했다. 검찰이 유씨의 다른 은신처로 추정했던 해남지역 지적도도 나왔다.
나성원 기자, 순천=황인호 기자
[유병언 사망] 경찰, 급습 다음날 정밀수색 때도 밀실 못 찾아
입력 2014-07-24 0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