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 5월 25일 밤 전남 순천의 별장을 급습할 당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별장 내부 비밀공간에 숨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유씨 검거에 성공했더라면 그의 허무한 죽음을 막고 법적 책임도 물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검찰은 매실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유씨의 신원 파악을 소홀히 해 40일 동안 수사력을 낭비한 데 이어 은신 장소를 수색하고도 코앞에서 유씨를 놓치는 우를 범했다. 두 번씩이나 국가 수사기관의 치명적 실수와 무능이 확인된 셈이다.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23일 유씨를 검거하지 못한 데 대해 “할 말이 없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수사팀은 5월 25일 오후 4시 순천 송치재휴게소 인근의 별장 ‘숲속의 추억’을 찾아갔다. 유씨의 도피를 돕다 당일 0시30분 경기도 안성에서 체포된 한모씨로부터 “숲속의 추억 별장에서 유씨를 본 적이 있다”는 진술을 확보한 뒤였다. 그런데 별장 문이 잠겨 있어 곧장 진입하지 못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고서야 오후 9시30분부터 11시20분까지 별장을 수색했으나 유씨를 찾아내지 못했다. 대신 별장에 머물고 있던 여비서 신모(33·여)씨를 범인도피 혐의로 체포했다. 미국 국적의 신씨는 현장에서 횡설수설하고 영어로만 답하는 등 수사팀을 혼란스럽게 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튿날 전남지방경찰청에 의뢰해 오후 3시부터 2시간 이상 별장에 대한 정밀감식을 실시했지만, 유씨의 체액 등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신씨는 같은 달 28일 검찰 조사에서는 “25일 새벽 잠을 자고 있는데 인기척이 나서 눈을 떠보니 성명불상의 남자가 유씨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시 잠들었다가 깨니 유씨가 사라지고 없었다”고 진술했다. 신씨는 한 달 뒤인 지난달 26일에서야 검찰의 수색 당시 유씨가 별장 안에 숨어 있었다고 당초 진술을 번복했다. 신씨는 “5월 25일 수사관들이 별장 문을 열려고 하는 소리가 들려 유씨를 2층 통나무 벽안에 있는 은신처로 급히 피신시켰다. 수사관들이 수색을 마칠 때까지 유씨는 그 안에 숨어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은 다음날인 6월 27일 부랴부랴 별장 내부를 다시 수색했지만 이미 유씨는 그곳에 없었다. 별장 2층에는 통나무 벽을 잘라서 만든 3평(약 9.9㎡) 정도의 밀실이 발견됐다. 좌우 끝 부분은 지붕 경사면으로 돼 있고, 공간 안쪽에는 나무로 만든 잠금장치가 설치됐다. 밖에서 볼 때는 통나무로 위장해 눈에 띄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검찰은 통나무 벽안에서 여행용 가방 2개를 발견했다. 가방 안에는 4번, 5번이라고 적힌 띠지와 함께 현금 8억3000만원, 16만 달러(약 1억6000만원)가 들어 있었다. 검찰은 유씨나 조력자들이 그곳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뒤늦게 주변에 CCTV를 설치했다. 그러나 유씨는 이미 한 달 반 전에 신원불상의 변사자로 발견돼 장례식장 냉동실에 안치돼 있던 때였다. 검찰이 1차 수색 직후 별장 주변에 현장보존 인원 2명만 배치했어도 탈출을 시도하는 유씨를 검거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팀장인 김회종 인천지검 2차장검사는 “(5월 25일 첫 수색 때) 찾지 못한 것이 통탄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경찰청은 이날 유씨 변사체에 대한 초동수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정순도 전남지방경찰청장을 직위해제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
[유병언 사망] 한심한 檢… 별장 급습때 벽안에 숨은 유병언 몰랐다
입력 2014-07-24 0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