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니 21세기 첫 10년은 미래로 넘어가는 문턱이 아니라 ‘재’ 시대였다. 2000년대는 접두사 ‘재-’(再, re-)가 지배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문화를 뭐라고 명명해야 할까? 21세기의 지난 10여년을 규정할 만큼 지배적인 문화 현상이란 게 존재하기나 한 걸까? 이런 질문들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반가울 듯 하다. 저자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는 음악평론가인데, 복고주의를 뜻하는 ‘레트로(retro)’를 이 시대 대중문화의 키워드로 제시하면서 “2000년대는 ‘re-’가 지배했다”는 과감한 주장을 내놓는다.
그에 따르면 현재의 대중문화는 과거에 중독됐다. 팝음악만 그런 게 아니다. 영화나 TV도 마찬가지고, 빈티지 패션이나 박물관 유행도 ‘재탕의 시대’를 증언하고 있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한국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응답하라’ 신드롬, ‘나는 가수다’ 인기, 영화 ‘건축학 개론’의 흥행, 음악카페 ‘밤과 음악 사이’ 확산, 가수 이장희 김추자 컴백, 그룹 소방차 지오디 재결합 등등 한국 대중문화가 복고주의에 빠져 있다는 증거는 수두룩하다.
이 책은 미국, 영국, 일본 등에서 팝음악과 대중문화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레트로의 풍경을 두루 비춰준다. 이를 통해 복고주의를 일시적이거나 주변적인 현상 정도로 보던 기존 시각에 도전한다. 그러나 이 책이 진정 빛나는 부분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있다.
“문화가 노스탤지어에 매달려서 앞으로 나갈 힘을 잃은 걸까, 아니면 문화가 더는 앞으로 나가지 않아서 결정적이고 역동적이던 시대에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걸까?”
저자는 레트로 문화의 이면에서 보이는 창조력의 결핍, 창조의 종말에 대해 얘기한다. 그는 “2000년대가 진행할수록 앞으로 나가는 감각은 점점 엷어졌다”면서 “21세기 들어 새로 출현한 주요 장르나 하위문화가 과연 있나?” 묻는다. 그리고 이 시대 예술가들이 “낡은 감성을 재연하고 있을 뿐이 아닌가?” 의심하고, “선구자나 혁신가가 아니라 큐레이터나 아카이브 관리자가 됐다”고 진단한다.
특히 레트로 문화를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대목은 날카롭고 신선하다. 유튜브와 구글 때문에 “우리 생활에서 과거가 차지하는 비중이 헤아릴 수 없을 만치 커졌”고, “롱테일 이론의 흥미로운 함의는, 뉴미디어 환경 덕분에 힘의 균형이 최신 문화에 불리하고 과거에 유리한 쪽으로도 기울었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레트로 문화, 창조력 결핍인가 창조의 종말인가
입력 2014-07-25 1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