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0일] 살아남은 자들의 100일… 3인의 멘토가 말하는 생존학생과 안산

입력 2014-07-24 03:15
세월호 참사 유족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15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가진 서울 여의도공원에 국민 350만1266명이 서명한 청원서 상자가 빼곡히 놓여 있다. 연합뉴스

김홍선 안산 명성교회 목사

김현수 안산정신건강 트라우마센터장

정운선 경북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세월호 참사로 경기도 안산은 ‘한 집 걸러 한 집’ 꼴로 피해를 입었다. 우울함이 온 도시를 휘감았다. 그러나 회복해야 했다. 살아남은 자들은 어쨌든 계속 살아야 했다. 쏟아지는 세간의 관심과 웅성거림 속에서 안산 시민들은 슬픔을 극복하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사고 직후부터 이들을 지켜본 ‘멘토’들은 “안산 시민들에겐 시간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달라”=사고가 난 지 100일이 된 지금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유족들이다. 그들은 이제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적응해야 하는 순간과 마주하고 있다. 타인의 시선을 극복하는 과제도 남았다. 김홍선 안산 명성교회 목사는 23일 “유족들 입장에서 가장 괴로운 것은 이전과 달라진 사람들의 시선”이라고 했다. 김 목사의 교회 주변에는 희생자·실종자 가정 82가구와 생존자 25가구가 살고 있다. 단원고 양온유(17)양과 최진혁(17)군 등 6명의 교인이 이번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그는 “유족들은 ‘옷을 잘 챙겨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옷을 잘 입었다고 뭐라 하지 않을까. 평범하게 입고 나가면 왜 또 저렇게 입었냐며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것 같다’고 호소한다”고 전했다.

유족들은 다른 주민들의 일상에 끼어드는데도 망설인다. 김 목사는 “동네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마음껏 웃지도 울지도 못하기 때문에 결국 유족들끼리만 모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족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심리적인 억압감과 부담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주변의 배려”라고 강조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 난항을 겪으면서 유족들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악성 댓글에도 시달렸다. 슬픔을 추스를 시간도 모자란데 난무하는 유언비어에 대처할 힘은 더더욱 없었다. 사고 직후부터 유족들의 심리 상담을 맡아온 김현수 안산정신건강 트라우마센터장은 “유족들은 자식이 누구 때문에, 왜 죽었는지 알고 싶을 뿐”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김 센터장은 “유족들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정치권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가 진척이 없자 매우 실망한 상태”라며 “자식을 잃은 슬픔이 분노로 바뀌는 단계에 다다른 것이지 아직 상처 치유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논란이 된 희생자 의사자 지정이나 단원고 대입 특례입학 등은 유족들이 꺼낸 얘기도 아닌데 비난의 화살은 유족들이 다 맞고 있다”며 “이들이 있는 그대로 마음을 터놓고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따뜻한 시선만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남은 평생이 치유 과정…어른들의 배려 필요=눈앞에서 친구들의 죽음을 목도한 단원고 학생들에게는 트라우마 극복이 평생의 과제로 남았다. 너무 큰 슬픔이 닥쳤을 때 감정을 억제하는 것은 때로는 독이 된다. 김 목사는 “울 사람은 울게 하고, 웃을 사람은 웃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겉으로는 꽤 치유된 것처럼 보여도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있어서 얘기를 안 꺼낼 뿐, 그 속이 얼마나 고통으로 문드러졌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슬리퍼 차림으로 모여 수박 하나 쪼개 먹으며 정담도 나누고 울고 웃는 그런 일상적인 공동체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원고 상담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는 정운선 경북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일상을 통한 치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최근 단원고 2학년생들의 국회 행진 등이 이슈가 됐는데, 이런 공적 활동보다는 정신건강 전문가와 함께하는 일상적인 치료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고 수습 과정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분쟁에 아이들이 휘말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며 “아이들이 정치적 매개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정 교수는 “물리적 재난에도 골든타임이 있듯이 정신적 재난에도 골든타임이 있다”며 “아이들이 그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정부가 나서 상담 체계를 정비하고 전문가들을 활용한 치료 정책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산=정부경 김동우 황인호 임지훈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