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도 ‘시신 뒷북 확인’에 난처… 죽은 유병언 잡으라고 수차례 독려한 꼴

입력 2014-07-24 02:20
박근혜 대통령이 검·경의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시신 ‘뒷북’ 확인으로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이미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명을 수차례나 거론하며 검거에 적극 나서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23일 소프트웨어중심사회 실현 전략보고회, 창업기업 현장 방문 등 이른바 ‘창조경제 현장’ 방문 행보만 이어갔다. 전날 국무회의에 이어 이날도 유병언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철저히 ‘유병언 거리두기’를 하는 모양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국민들께 말씀하실 기회가 앞으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침묵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수사기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은 마당에 이를 다시 환기시킬 이유가 없고, 코앞에 닥친 7·30재보선에도 절대 호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권 일각에선 박 대통령이 특정 인물을 5차례나 직접 지목하고 검거를 재촉한 것이 오히려 부담을 키웠다는 시각이 있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유병언을 사회적 적폐의 상징으로 부각시킨 일이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 형국이라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직접 사안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은 나중에 일이 잘못될 경우 책임이 대통령에게 바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참모들이 이런 상황을 감안했어야 하는데 판단이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야당은 전날에 이어 박 대통령의 사과와 수사책임자 경질을 거듭 주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공동대표는 “국민적 의혹과 당혹감에 대해 유병언 체포를 독려한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당 유기홍 수석대변인도 “유병언 잡는다고 군대를 동원하고 반상회를 열고 박 대통령은 엄포까지 놓았던 것 아니냐”며 “박 대통령은 책임을 느끼고 사과하고 책임자를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28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닷새간 휴가에 들어간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 듯 외부 일정 없이 청와대 관저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당초 외부 휴가 여부를 고민했던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여파를 고려해 결국 관저에서 보내기로 했다. 세월호 사고 실종자가 아직도 10명이 남아 있는데 청와대 밖 휴가지로 떠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이는 게 좋지 않다는 의미다.

한때 청와대 내부에선 민생경제 활성화 의지 차원에서 박 대통령이 휴가를 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