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눈 뜬 장님이야.”
실종자 권재근(52)씨의 형 오복(59)씨가 혀를 끌끌 찼다. 정부의 무능함에 대한 분노를 넘어 서글픔이 전해졌다. 22일 오전 8시 전남 진도실내체육관 앞에 설치된 대형 TV에서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전남 순천의 한 매실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뉴스특보가 이어졌다. “숲속의 추억인가 뭔가 하는 별장 옆이라며? 얼마 떨어진 곳도 아니었는데 어차피 잡으려고 한 것도 아니었던 거야.” 권씨는 이내 옆 TV로 고개를 돌렸다. 미국 메이저리거 류현진의 선발등판 경기가 중계되고 있었다.
“말도 안 된다. 저 시체가 유병언이 맞느냐”는 탄식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뉴스를 보던 40대 자원봉사자는 옆에 있던 경찰에게 “저걸 믿으라는 거예요? 초등학교 1학년도 안 믿겠다”고 쏘아붙였다.
진도 팽목항과 체육관을 지키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유씨 소식은 또 하나의 상처였다. 실종자를 찾은 가족들도 하나둘씩 떠나고 자원봉사자 천막도 거의 사라진 텅 빈 공간. 기다림에 지친 가족들은 유씨의 소재도 파악하지 못한 채 40여일을 낭비한 정부를 탓할 힘조차 없어보였다.
오후 5시에 열리는 정부 브리핑도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그냥 흘러가는 일상일 뿐이다. 약 20분간 이어진 수색상황 브리핑을 듣고 나오는 가족들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이날도 실종자 아버지들은 바지선을 타고 수색현장으로 떠나 남은 실종자 가족은 5∼6명밖에 되지 않았다. 실종자 딸을 둔 어머니 신명섭(49)씨는 “소조기가 끝나 가는데 언제쯤 나오나 몰라. 이제 얼른 나와야지”라며 혼잣말을 했다. 신씨는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남동생과 함께 팽목항 방파제로 향했다.
실종자 가족 외에 아직 현장에서 가족들 옆을 지키는 이들도 있다. 셔틀버스를 운전하는 김명석(56)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오전 7시부터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을 오간다. 김씨는 “차량 4대가 30분 간격으로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을 왔다 갔다 하는데 아무도 타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점심과 저녁시간 때를 제외하면 버스에 타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
4월 17일부터 팽목항에서 ‘가족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한국재난구호협회 조성래 이사장은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다양한 메뉴를 매번 바꿔가며 최대한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려 노력한다”며 “마지막 한 명의 실종자가 발견될 때까지 팽목항 현장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백상진 기자, 진도=양민철 기자 sharky@kmib.co.kr
[세월호 참사 100일-르포] 기다림에 지친 실종자 가족들… 유씨 사망 속보에 탄식만
입력 2014-07-24 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