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만1901명 대 239만4570명.’
월드컵 4강 진출로 한반도를 축구 열풍으로 몰아넣었던 2002년. 프로축구 K리그의 인기는 프로야구를 능가했다. 불과 10년 뒤인 2012년 전세는 ‘241만9143명 대 715만6157명’으로 바뀌었다. 프로야구는 700만명 관중 시대를 열며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은 반면 축구는 케이블TV에서조차 생중계를 외면하는 종목으로 전락했다. 대한민국 축구는 ‘그깟 공놀이’일 뿐이다.
이때 등장한 이가 정몽규 현 대한축구협회장이다. 2013년 1월 52대 축구협회장 선거에 출마하며 축구를 산업으로 업그레이드하겠다고 공약했다. 당선된 뒤에는 개혁과 소통을 강조했다.
2014년 7월 10일 정 회장은 브라질월드컵 참패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뼈를 깎는 노력을 하겠다”는 다짐을 담았다. 홍명보 감독의 사퇴에 여론의 관심이 쏠려 있던 틈새를 노려서다.
정 회장의 ‘뼈를 깎는 노력’은 이미 여론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후임 국가대표팀 감독과 차기 기술위원장 관련 뉴스만 간간이 나오고 있다. 위기 국면을 잘 돌파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6개월 뒤 2015년 아시안컵이 열리면 또다시 정 회장은 여론의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다. 대국민 사과는 임시처방일 뿐이다.
축구협회장 선출방식 바꿔야
지금이 개혁의 적기다. 정 회장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우선 ‘축구=현대’라는 이미지를 지워야 한다. 일부 축구팬들은 ‘축구라고 쓰고 현대라고 읽는다’며 범(汎)현대가 중심의 축구계를 조롱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은 1993년부터 2009년까지 16년 동안 축구협회장을 맡으며 축구 대통령으로 군림해 왔다. 지금도 축구협회 명예회장으로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중연 전 회장은 정 전 의원의 축구계 대리인이었다. 현대산업개발 회장인 정몽규 회장은 정 전 의원의 사촌동생이다. 축구협회가 범현대가의 ‘계열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범 현대가 중심의 축구 여당의 장기 집권이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의 장기 집권은 썩기 마련이다. 과감한 인적 쇄신만이 대안이다.
개헌보다 어렵다는 축구협회장 선출 방식에도 메스를 가해야 할 때다. 1000억원의 예산 집행 권한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 축구협회장을 고작 24명의 대의원들이 선출한다. 16명의 시·도 축구협회장과 8명의 축구협회 산하 연맹 회장이 그들이다. 예산이 부족한 시·도 협회와 연맹들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답이 나와 있다. 축구협회장 선거 때마다 ‘어떤 대의원은 얼마를 받았다더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 수밖에 없다.
대의원 선거가 아닌 사실상 축구계의 직접 선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대의원의 문호를 선수와 심판, 지도자, 리그 대표로 확대해야 한다. 밀실 선거가 아닌 축구인의 축제로 축구협회장 선거를 만들어야 한다. 잉글랜드 대의원은 394명, 독일 260명, 프랑스 256명, 스페인 180명이다. 특히 스페인은 선수대표 48명과 심판 대표 14명, 지도자 대표 14명 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기술위, 독립기구 격상 필요
마지막으로 기술위원회를 상근직 중심의 독립 기구로 격상시켜야 한다. 국가대표 지도자를 추천하고 대표팀과 관련된 자료를 제공한다는 협회 정관에 충실하자는 의미다. 회장 측근을 내려 보낼 것이 아니라 축구 야당 인사까지 포함해 유능하고 덕망 있는 인사들 가운데 선발해야 한다. 그들에게 독립 기구에 걸맞은 예산과 책무를 주어야 한다. 개인 비서형 기술위원장이 또다시 나와서는 안 된다.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을 꿈꾸는 정 회장. 정 회장이 먼저 몸을 던져야 본인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김영석 체육부장 yskim@kmib.co.kr
[데스크시각-김영석] 축구라고 쓰고 ‘현대’로 읽는다
입력 2014-07-24 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