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한 출신 작가 몇 분과 함께 모 단체에서 공모한 ‘탈북민수기’ 심사를 한 적이 있다. 필자에게는 흔한 일이어서 별로 놀라지 않았는데 함께 작업을 한 어느 심사위원이 열람시간 내내 눈가에 손수건을 가져가는 것을 보았다.
노동당 정책을 비판했다고 심야에 몰살된 가정, 밥 실컷 먹고 죽으면 원이 없겠다고 외치는 유랑걸식의 아이들, 굶주림을 못 참아 농장의 소를 잡아먹었다고 공개총살된 노인, 몸을 팔아 자식의 끼니를 마련하는 엄마들, 통행증 없이 지역을 벗어났다고 간첩 누명을 쓰고 수용소에 갇힌 사람 등을 기록한 탈북민들의 수기다.
눈물 속에 심사를 마치며 그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면서 “이런 비참한 삶을 살면서도 왜 북한 주민들은 당국에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를 못하는가”라고 묻는다. 그 순간만큼은 필자가 탈북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북한에서 2000만 주민들의 생활은 100% 당과 수령 중심으로 묶여 있다. 그들은 유치원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 조직생활에 참여한다. 비판과 학습, 강연이 기본인 ‘조직생활’은 주민들을 하나로 엮는 신경세포다.
체제 지탱의 받침목인 이런 조직생활을 지도하는 최고기관이 바로 노동당이고 김정은이다.
모든 주민들은 자신이 속한 단체별로 정치학습 등 각종 모임에 시달린다. ‘생활총화’는 주민들이 소속된 조직에서 1주일에 한 차례씩 반성의 시간을 갖는 제도로 이는 자기 및 상호비판의 대결장이다. 모든 일터에는 일과 전 30분씩 당 기관지 ‘노동신문’ 사설 독보회가 있고 수요학습, 금요강연, 토요총화가 있다.
그러면 북한 주민들은 직장이 아닌 가정에서는 자유로울까. 그렇지 않다. 거주지역에는 보통 30∼40가구가 1개 ‘인민반’으로 구성된 조직이 있으며 여기서도 노동당 소속의 각급 단체들에서 내려오는 정치 지시 및 행사가 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전부 당국의 통제 속에 산다고 보면 정확하다.
북한 주민들의 일상에서 실핏줄처럼 파고 든 이러한 조직생활은 정말 지겹고 피를 말린다. 생사람을 잡는 것이고 잠시도 잡생각을 못하도록 만든다. 정치적 정신병자가 된 주민들은 당에 절대충성을 위해 주변의 불순분자를 찾기 위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산다. 그래야만이 출세와 배급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가 끝이 아니다. 자기 사는 지역을 벗어나려 해도 애경사 등 합법적인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것도 국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북한 주민들이다. 엄연히 비교해서 말하면 남한의 개(犬)에게도 충분히 있는 자유가 그들에게는 전혀 없다.
근 70년간 이러한 사회체제에 숙련된 북한 주민들은 정부 정책에 의문 제기는 고사하고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는다. 수령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면 독자 사고의 여지가 완전히 없어진다. 집단주의를 요구하는 노동당 정책에 생각과 행동의 제약을 받아온 주민들에게 의식과 견해는 깡그리 사라지고 순응과 복종만 남았다.
사람이 아닌 동물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말도 못하는 것이다. “당과 수령이 나쁘다”는 말은 고사하고 “배고파 못 살겠다”는 말조차 할 수 없다. 동물이 어떻게 시위를 한단 말인가. 그래서 세계 유례가 없는 김씨 일가 3대 세습이 가능했다. 김정은 정권 3년 내에 통일이 없다면 30년 후에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무능하고 잔인한 지도자 김정은 때문에 계속되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이다. 그들의 짐승 같은 생활을 끝장내기 위해서는 통일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 남한에는 풍요로운 삶과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대박통일’이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죽어가는 생명의 소생이냐, 방치냐 하는 절박한 통일이다.
림일(탈북 작가)
[기고-림일] ‘절박통일’ 원하는 북한 주민들
입력 2014-07-24 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