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조준모] GM의 통상임금 제의와 ‘神의 한 수’

입력 2014-07-24 02:11

최근 한국GM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겠다고 노동조합에 전격 제안한 바 있다. 필자는 이러한 제의에 대해 단순히 경영진이 노동조합에 시혜성 제의를 했다고 보기보다는 글로벌 GM의 사석작전(捨石作戰)의 일환으로 판단한다. 바둑에서 사석작전이란 내부의 바둑돌을 죽이면서 외벽을 구축해서 전체 모양을 정비하는 작전을 의미한다. 한국GM은 내부의 돌, 외벽은 글로벌 GM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GM의 제의 이후 다른 완성차 업체뿐만 아니라 여타 노동조합들도 통상임금 확대를 요구하고 나섰다. 경영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철두철미한 손익계산 하에 글로벌 전략을 세우는 것이다. 필자가 다수의 노동 관련 학자들과 토의한 결과 한국GM의 제의는 바둑 9급 수준의 하수전략이라는 평가와 9단 수준의 초절정 전략이라는 극과 극의 평가가 존재한다.

하수전략이라는 논리에 따르면 한국GM의 경우 대법원에서 정기상여금의 고정성을 이미 인정하여 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된 상태에서 GM 경영진이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노동조합이 파업이라도 하게 되면 한국의 파업에 극도로 예민한 GM 본사에서 자본철수를 결정할 수 있고, 파업만은 피하기 위해 경영진이 선제적으로 제의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물론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총액 인건비 범위 내에서 연월차를 줄이고, 연장특근을 줄이고, 기본급 인상을 억제하는 등 노동조합이 공개할 수 없는 부대조건들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바로 이 부분에 대해 노동조합이 섣불리 수용할 수 없는 딜레마도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경영진의 제의를 수용하면 특근이 감소한 만큼 생산물량도 줄어들어 글로벌 GM의 사석작전이 본격화될 것이고 이에 반발하여 파업이라도 하면 자본철수를 통해 전체 일자리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

반면 초절정의 경영전략이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현대·기아차의 생산량은 연간 약 780만대, 글로벌 GM의 연간 생산량은 1000만대가량 된다. GM 본사에서 한국GM의 통상임금 비용의 일부 증가를 감수하더라도 현대·기아차의 경우 특근잔업이 한국GM보다는 훨씬 많기 때문에 통상임금 상승폭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일석이조로 현대·기아차의 노사관계에 갈등을 부추기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 이는 경제학적으로 자기 기업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경쟁사는 더 큰 손해를 보게 하는 약탈적 임금정책일 가능성도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GM의 제의는 요즘 유행하는 바둑영화 제목인 ‘신의 한수’라고도 할 수 있다.

필자는 한국GM의 경우를 통해 우리가 인지해야 할 시사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통상임금은 경영진과 노동조합 간에 부의 이전을 다투는 단순한 교섭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경쟁 구도 하에서 노사의 생존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노사 어느 한쪽의 근시안적 판단은 일자리의 대량 상실이라는 소탐대실을 유발할 수 있다. 둘째, 기업 단위 노사의 입장에서 통상임금 이슈는 서초동 대법원, 여의도 국회만을 바라봐서는 안 된다. 전국 단위 노사도 이미 이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노사는 사업장 단위별로 각자도생의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셋째, 통상임금-근로시간단축-정년제 등 노사 이슈를 건마다 교섭하는 것은 체력 낭비이자 노사교섭의 합리적 균형성을 찾기도 어렵다. 사업장 단위별로 세 가지 이슈에 대해 패키지 딜(일괄타결)로 비용을 최소화하는 바터(주고받기)식 교섭을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판단된다.

통상임금 문제는 법원의 판례(혹은 국회입법)-정부의 정책-기업 단위 노사의 사적자치 등 3원 연립방정식을 풀어가는 과정이다. 법원은 특정사건에 대한 사법기관이지 정책기관이 아니며 기업의 인사관리 담당자 혹은 노동조합은 더더욱 아니다. 문제의 당사자들인 경영진과 노동조합이 공동의 운명을 개척하기보다 근시안적 이전투구를 하다가는 ‘신의 한 수’에 걸려 글로벌 쓰나미에 휩쓸려 갈 수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