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여객선 여행을 꺼려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홍도를 비롯한 섬 주민들의 고통도 계속되고 있다. 수입의 80% 이상을 관광에 의존하는 홍도의 경우 관광객이 평소의 25% 수준으로 떨어져 성수기를 맞은 절해고도 주민들의 시름은 나날이 깊어가고 있다. 이에 국민일보는 섬 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원추리가 만개한 홍도로 여행을 떠나본다.
1004개의 섬이 있다고 해서 ‘천사의 섬’으로 불리는 전남 신안군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은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홍도(紅島)이다. 홍도는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섬이 석양에 붉은 색을 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옛날에는 붉은 옷을 입은 섬, 홍의도(紅衣島)로 불리기도 했다.
중국의 닭 우는 소리에 잠을 깬다는 다도해의 절해고도인 홍도는 목포 서남쪽 115㎞에 위치해 손바닥만한 한반도 지도에서도 늘 제자리가 아닌 별도의 사각형에 표시되는 외딴 섬이다. 폭풍우라도 몰아치면 며칠씩 육지와 단절되는 고독의 섬이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의 ‘가고 싶은 섬’에 선정되면서 허름한 민박집들이 도시 못지않은 숙박업소로 거듭나 섬여행 1번지로 자리를 굳혔다.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비금도 도초도를 곡예하듯 빠져나온 쾌속선이 흑산도의 거친 파도에 익숙해질 무렵 초록 모자를 쓴 붉은 바위덩어리 하나가 해무 속에 아련하다.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이라 돌 하나 풀 한 포기조차 반출이 금지되는 홍도는 섬 모양이 아기자기해 ‘여자의 섬’으로 불린다.
홍도 여행은 배 모양의 홍도연안여객선터미널이 위치한 1구 마을에서 시작된다. 1구 마을은 100가구에 350명이 사는 아담한 마을로 급경사의 산자락에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수령 300년의 동백나무를 비롯해 후박나무, 황칠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이 군락을 이룬 당산숲은 막다른 골목길에서 시작된다.
한낮에도 어둑어둑한 당산숲에는 주민들이 산나물을 채취하기 하기 위해 오르내리던 오솔길의 흔적이 뚜렷하다. 이 오솔길 끝에 일출전망대로 가는 급경사의 나무데크 산책로가 설치되어 있다. 거친 호흡과 함께 전망대에 오르면 1구 마을과 깃대봉, 그리고 남문바위 등 기암괴석은 물론 멀리 흑산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1구 마을의 서쪽에는 어른 주먹에서 수박 크기의 붉은색 몽돌이 지천으로 깔려있는 몽돌해수욕장이 위치하고 있다. 홍도의 유일한 해수욕장으로 파도가 몽돌 위를 구르는 소리는 천상의 화음이나 다름없다. 해질녘 몽돌해수욕장을 붉게 채색하는 일몰이 장관으로 해가 지고 나면 은하수가 보일 정도로 밤하늘이 초롱초롱하다.
홍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에서 한국의 100대 명산으로 선정된 깃대봉(365m)까지 2㎞ 길이의 탐방로를 산책하는 것이다. 탐방로를 비롯한 바닷가 절벽에는 노란색 원추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학명이 홍도큰원추리인 홍도 특산종으로 일반 원추리보다 꽃이 크고 색깔도 선명해 밤하늘의 별이 모두 홍도에 내려앉은 듯하다.
첫번째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홍도는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화이다. 바다 위를 몰려다니는 해무 덩어리가 수시로 홍도를 삼켰다 토하기를 반복하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해무 속에서는 새소리와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마침내 해무가 물러나면서 드러나는 홍도 1구의 파스텔 톤 마을은 영락없는 한국의 산토리니를 연출한다.
나무데크 탐방로가 끝나면 동백나무를 비롯한 상록수가 울창한 숲 속으로 길이 이어진다. ‘연인의 길’로 명명된 탐방로에는 연리지를 비롯해 숲속의 쉼터, 숨골재, 숯가마터 등이 차례로 나온다. 깃대봉 정상은 흑산도와 태도를 비롯해 국토 서남단 끝섬인 가거도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포인트. 이곳에서 계속 직진하면 2구 마을과 홍도등대가 나온다.
홍도의 숨은 비경은 홍도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유람선을 타고 기암괴석이 즐비한 홍도 주위를 한바퀴 돌아야 볼 수 있다. 홍도 33경 중 제1경인 남문바위와 실금리굴 거북바위 만물상 부부탑 석화굴 슬픈여바위 공작새바위 등 온갖 형상의 기암괴석들이 저마다의 전설과 사연을 간직한 채 줄줄이 이어진다. 요술동굴로 명명된 동굴에는 사철나무가 동굴천장에 뿌리를 내린 채 거꾸로 자란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벼랑에는 아직도 풍란이 은은한 향을 날리고 분재를 닮은 노송은 고고한 자태를 자랑한다.
홍도의 명물은 파도가 만든 220여 개의 해식동굴이다. 유배 온 선비가 평생 가야금을 뜯으며 여생을 즐겼다는 슬금리굴, 노을이 동굴 속으로 스며들면 오색찬란한 빛이 서린다는 석화굴 등 이름난 동굴을 비롯해 낚싯배가 아니면 접근조차 불가능한 무명의 크고 작은 동굴들이 수두룩하다.
홍도의 20여개 부속 섬 중 하나인 단오도의 동굴도 그 중의 하나다. 바위섬인 단오도의 깎아지른 절벽은 돌미역과 홍합 등 바다생물의 보고. 돌미역을 따러 온 거룻배 한 척이 조심스럽게 절벽에 접근하면 아낙들이 잽싸게 뛰어내려 미역을 채취한다. 수직벽인 데다 미끄러워 웬만한 사람들은 한발 들여놓기도 힘들지만 아낙들은 용케도 절벽에 매달려 익숙한 솜씨로 미역을 채취한다.
홍도등대를 품고 있는 홍도 2구 마을의 땅을 밟아보지 않으면 홍도여행은 반쪽에 불과하다. 1913년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는 홍도등대는 아찔한 절벽을 배경으로 낮을 밤 삼아 고독을 즐긴다. 그곳에는 섬을 지키는 등대지기들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등대가는 길에 그대로 배어 있다.
유람선 여행이 끝나갈 즈음 작은 어선 한 척이 약속이나 한 듯 유람선에 접근한다. 홍도의 특산물인 줄돔을 회로 쳐서 팔기 위해서다. 가늘게 썬 연분홍색 생선살을 초장에 찍어 입에 넣는 순간 홍도의 바다를 한입에 먹는 호사를 누리게 된다.
시리도록 푸른 바다에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유람선이 부속섬인 진섬을 돌아 나오는 순간 왜 홍도와 흑산도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너무 푸르러 검게 보인다는 흑산도와 붉은색 바위로 이루어진 홍도의 바위가 겹쳐지면서 검은색과 붉은색 섬이 대비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짙은 고독이 배어있는 홍도. ‘여자의 섬’ 홍도는 오늘도 먼 수평선에서 홀로 외로움을 타고 있다.
홍도(신안)=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기암괴석 풍광, 파스텔 색깔 예쁜 집… ‘한국의 산토리니’ 홍도
입력 2014-07-24 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