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시신 확인] 부친 사망·모친 구속… 남은 건 장남 유대균

입력 2014-07-23 02:23
1992년 법정에 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왼쪽)과 장남 대균씨. 국민일보DB

“내 노년의 비상하는 각오와 회복되는 건강을 경축하며….”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도피생활 중 남긴 자필 메모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단교회 목사에서 사업가, 발명가, 사진작가 등 끊임없이 모습을 바꿔온 유씨는 도피행각을 벌이다 끝내 변사체로 발견됐다.

유씨가 세간에 알려진 건 1987년 이른바 ‘오대양 사건’ 때다. 당시 유씨가 배후라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검찰 수사에서 직접적인 연관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는 91년 오대양 재수사 때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신도들에게 11억9000만원을 끌어 모아 가로챈 혐의로 구속돼 4년간 복역했다.

대구에서 고교를 졸업한 유씨는 62년부터 훗날 장인이 되는 고(故) 권신찬 목사와 함께 활동을 시작했다. 구원파의 시초였다. 그는 76년 ‘구원받은 신도들의 구심점을 마련한다’는 명목으로 경영난에 허덕이던 삼우트레이딩을 인수했고, 2년 뒤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그는 ‘사업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논리를 펴면서 신자들로부터 회사 운영자금과 노동력을 수혈 받았다. 삼우트레이딩은 82년 회사 명칭을 세모로 변경했으며 86년에는 한강 유람선 사업권을 취득하는 등 사세를 확장했다.

유씨는 출소 후인 95년 세모에서 해운사업부를 분사해 세모해운을 설립했지만 2년 뒤인 97년 부도를 맞았다. 유씨는 2003년 세모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이후 계열사의 어떤 공식 직함도 맡지 않았다. 대신 얼굴 없는 사진작가 ‘아해’로 활동했다. 그동안 세모는 법정관리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예전의 계열사들을 되찾고 5000억원대 자산을 보유한 기업집단으로 재건됐다. 수십년간 ‘그림자 경영’을 해 온 유씨는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침몰로 다시 검찰 수사 대상이 됐고, 도피생활 도중 사망했다.

◇장남 유대균은 어디=유씨가 사망함에 따라 검찰은 장남 대균(44)씨 추적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체포된 장녀 섬나(48)씨, 미국에서 행적을 감춘 차남 혁기(42)씨와 달리 국내에 머물고 있다. 대균씨는 세월호 참사 직후 프랑스 출국을 시도하다 실패했다. 검·경은 대균씨 체포에 현상금 1억원을 내걸었지만 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대균씨는 도피 초기 어머니 권윤자(71·구속기소)씨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일명 ‘신엄마’로 불리는 신명희(64)씨의 딸 박수경(34)씨와 함께 도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는 태권도 선수 출신으로 대균씨의 ‘호위무사’ 역할을 하고 있다. 추적팀은 대균씨가 경북·대구 지역에 숨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빈집과 사찰 등을 집중 수색하기도 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호일 정현수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