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시신 확인] 警, 변사체 발견 검거팀에 안 알려-檢, 보고 받고도 유씨 생각은 못해

입력 2014-07-23 03:37

검찰과 경찰은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의 주검 발견 이후 초동 대처 미흡으로 40일간 수사력만 낭비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온 국민이 반상회에 나서고 박근혜 대통령의 질책으로 군 병력까지 동원됐던 유씨 추적은 말짱 헛일이었던 셈이다. 이미 사망한 유씨를 '반드시 검거하겠다'며 구속영장까지 재발급 받은 검찰은 망연자실했다.

순천경찰서는 지난달 12일 오전 9시6분쯤 "매실밭에 부패된 시체가 있다"는 박모(77)씨 신고를 받고 강력팀을 현장에 보내 신원확인에 나섰다. 그러나 부패가 심했고 신분증 등 신원을 알 수 있는 단서도 없어 노숙인의 단순 변사로 판단했다. 경찰은 "빈병이 있고 작대기에 괴나리봇짐 같은 게 달려 있어서 알코올 중독자가 죽어 있는 것 같았다"는 박씨 진술을 토대로 변사보고서를 작성해 검찰에 지휘를 요구했다.

그러나 현장에는 미심쩍은 점이 많았다. 비록 낡았지만 1000만원대 명품 옷과 수백만원대 신발은 노숙인의 것으로 판단하기에 무리가 있다. 구원파와 관계된 건강식품보조제 빈병도 나왔다. 무엇보다도 현장은 유씨가 지난 5월 25일까지 머문 것으로 확인된 전남 순천 송치재 휴게소에서 불과 2.5㎞ 떨어져 있었다. 검·경은 송치재 휴게소 별장 급습 작전 실패 이후 순천 지역을 용의지역으로 선정하고 5개 지점에 검문소까지 설치·운영했었다. 경찰은 유씨 은신처에서 도보로 불과 10여분 거리에서 변사체를 발견해 놓고도 경찰 검거팀이나 인천지검에 보고하지 않았다.

경찰은 초동수사 미흡에 대한 지적을 시인했다. 우형호 순천경찰서장은 22일 브리핑에서 "유류품이 다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간과했는데, 그게 수사 과정에서 미흡했던 부분"이라며 "그때 채취한 유류품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하는 등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했더라면 확인을 더 빨리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변사사건 지휘는 광주지검 순천지청 형사2부의 젊은 검사가 맡았다. 담당검사는 유류품과 현장, 주검의 모양 등을 찍은 사진이 담긴 변사보고서를 검토했지만 역시 유씨와의 연관성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대검 등 상부도 이를 보고받지 못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검사가 변사자 주변에 흩어져 있는 유류품만 보고 유씨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고 두둔했다. 다른 검찰 관계자는 "감이 있는 검사였다면 인천지검에 귀띔이라도 해줬을 텐데…"라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김진태 검찰총장은 이날 오후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해 상황을 점검한 뒤 감찰을 지시했다. 검찰 관계자는 "변사보고서 전체를 검토해 보니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담당 검사가 초기에 유씨 연관성을 의심했다면 충분히 다른 결정이 나왔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검찰은 전날 변사체 DNA가 유씨와 거의 일치한다는 보고를 받고 밤새 진위를 확인하느라 초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간부들이 현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씨 시신 발견 당시 부패 상황을 미뤄볼 때 늦어도 6월 초쯤 유씨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검찰은 6월 8일 유씨가 순천을 벗어나 전남 해남·목포로 간 정황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달 초에는 충청도 일대에 머물고 있다는 첩보를 확인하고 수색에 나섰다. 검찰은 지난 주말에도 금수원 인근 24곳을 압수수색해 조력자로 의심되는 구원파 신도 7명을 체포했다. 검찰은 전날 구속영장을 재발부 받은 뒤 "유씨가 아직 국내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중간 수사결과까지 발표했다. 검찰은 "조력자로 보이는 신도들의 동선이 확인되고 긴밀한 움직임 등이 포착되는 등 여러 정황을 분석해 유씨 행적을 추적했던 것"이라며 "우리도 그들이 왜 긴박하게 움직였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시신 발견 당시 인천지검은 금수원에 진입해 대대적인 수색을 벌이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유씨 이름을 언급하며 검·경을 질책했고 검찰은 군·경찰·해경·안전행정부·관세청 관계자까지 불러 대책회의도 열었다. 6월 13일에는 안행부 지침에 따라 전국에서 긴급 반상회까지 열렸다. 이미 죽은 유씨 추적에 연인원 145만1765명의 경찰력이 투입됐고, 검·경이 전국 별장과 모텔 등 20여만곳을 수색하는 동안 미제 사건이 급증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