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00일, 한국교회 어떻게 응답했나] (1) 봉사현장으로 달려간 크리스천

입력 2014-07-23 03:47
팽목항에는 적막만 가득했다. 실종자 10명 가족의 울음소리만 유독 크게 들리는 이곳에는 참사 100일의 슬픔과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지만 진도군교회연합회 등 한국교회는 실종자 가족, 자원봉사자, 경찰 등 남아 있는 이들에게 쉼 없는 봉사를 펼치며 사랑과 희망의 불씨를 이어가고 있다. 21일 밤 팽목항을 유일하게 비춘 진도군교회연합회 천막 불빛이 비극을 딛고 일어설 우리의 미래를 상징하는 듯하다. 진도 팽목항=강민석 선임기자
안산시기독교연합회 관계자들이 22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동산로에 마련된 공식분향소 앞 천막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안산=허란 인턴기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24일로 100일이 된다. 아직도 승객 10명이 바닷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등 세월호 아픔은 진행형이다. 한국교회는 봉사와 헌신으로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아픔을 나누거나 기도로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간구했다. 한국교회는 전남 진도와 경기도 안산에서 사랑과 치유, 극복이란 이름으로 하나가 됐다. 국민일보는 한국교회의 봉사현장, 예배 및 교육관의 변화, 크리스천 유가족의 애끊는 회한과 간구를 세 차례로 나눠 살펴본다.

21일 오후 6시 전남 진도 팽목항은 무거운 공기에 눌린 듯한 분위기였다. 세월호에서 아직 찾지 못한 이들은 총 10명. 기다림에 지친 실종자 가족들은 임시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팽목항을 오가는 이는 가족을 돕기 위한 봉사자들과 경찰, 그리고 소방관들이 전부였다.

한 남자가 팽목항에 있는 진도군교회연합회(진교연) 천막 앞에서 "이 자두 가져가도 되죠? 몇 개 가져갈게요"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슬픔을 애써 참는 팽목항의 정적을 깰 만한 소리였다. 천막 안에 있던 팽목교회 김성욱 목사가 이 남자에게 박스에서 갓 꺼낸 자두와 천도복숭아를 한 움큼 안겼다. 남자는 활짝 웃으며 김 목사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시했다.

과일을 가져간 이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 사고 첫날부터 팽목항에서 봉사하는 김 목사는 "어제 새벽에도 바다를 보며 울었던 분"이라며 "과일 하나로 위로를 받는 것 같아서 봉사활동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팽목항에서 음료품 생필품 등을 나눠주는 곳은 진교연이 유일하다. 다른 봉사단체들이 하나 둘 팽목항을 떠났지만 진교연만은 실종자 가족들과 고통을 함께 했다. 덕분에 진교연 천막은 팽목항의 '사랑방'이 됐다. 실종자 가족은 물론 자원봉사자 경찰 소방관 군인까지 배가 고프거나 생필품이 필요하면 진교연 천막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며 참사의 아픔을 달랜다. 진교연은 지금까지 약 1억2000만원 상당의 물건을 이곳 사람들에게 제공했다.

천막 봉사를 위한 교계의 발걸음도 참사 100일이 다가오면서 새롭게 이어지고 있다. 20일까지는 진도군의 78개 교회가 교대로 봉사했지만 21일부터는 호남신학대 등 방학을 맞은 신학대 학생들이 이들을 대신했다.

오후 8시 팽목항에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 퍼졌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요 8:29) 예배를 인도한 칠전교회 전정림 목사는 "어려운 이들을 돕고 위로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며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늘 함께 하신다"고 설교했다.

희생자 가족 대부분이 빠져나가 휑뎅그렁한 진도실내체육관에서도 유일하게 한국교회만은 자리를 지켰다. 현재 이곳은 진도군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측 교회가 교대로 봉사하고 있다. 이정실(50) 집사는 "지금은 그들과 함께 자리에 있어 주는 게 가장 큰 위로"라고 말했다.

세월호 희생자 상당수가 살았던 경기도 안산에서도 한국교회의 손길은 끊기지 않았다. 22일 오전 10시 안산의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공식분향소는 한산했다. 분향소 앞에 차려진 유가족 대기실 천막에는 '안전한 나라 촉구합니다' 등의 플래카드만 몇 장 걸려 있을 뿐 사람들은 없었다. 모두 곳곳에서 실시하고 있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 현장에 나갔기 때문이다. 근처 천막도 한산하기는 매한가지다. 종교·시민단체들이 분향소 앞에 세운 천막엔 한두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도 분향소 입구 맞은편 안산시기독교연합회(안기련) 천막만은 기도와 찬송의 숨결이 가득했다. 안기련 임원 7명은 이날 오전 9시 유가족과 예배를 드린 뒤 조문객을 맞거나 성경을 읽으며 천막을 지켰다.

안기련은 정식 합동분향소가 마련되자 이튿날인 4월 28일 천막을 설치하고 지금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유가족을 비롯한 세월호 참사 피해자를 대상으로 예배와 기도회를 인도했고 각 교단과 교회, 신대원 등 교계에서 온 조문객들을 안내했다. 유가족의 애로사항을 듣고 정부나 교계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평신도 봉사자를 구성해 단원고 경비를 섰고, 안산지역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에도 앞장섰다. 안기련 총무 원영오 등대교회 목사는 "우리는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지고 유가족과 함께 울어주고 같이 있어줄 뿐"이라며 "생존자들의 트라우마 치유를 위해 생존 학생 장학금 지급, 힐링 콘서트 개최 등 다방면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도 팽목항·안산=진삼열 양민경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