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만에 (매실) 밭에 갔더니 풀 더미 위로 사람 다리가 보이더라고."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의 시신을 지난달 12일 처음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던 농민 박모(77)씨는 22일 이렇게 당시를 회상했다. 며칠 동안 내렸던 비가 그치고 햇볕이 쨍쨍한 날이었다. 박씨는 "오랜만에 날이 개서 밭 관리를 하러 산에 올랐다"며 "노루가 매실 잎을 뜯어먹곤 해 밭을 둘러보는데 사람이 보여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박씨의 매실밭은 전남 순천시 서면 학구리 산기슭에 있다. 이곳 토박이인 박씨는 밭을 일구며 고추, 감 등을 재배해왔다. 매실은 지난해부터 심었다. 유씨의 은신처였던 '숲속의 추억'에서 불과 2∼3㎞ 떨어진 곳이다.
박씨는 시신이 유씨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옷과 신발 등이 허름해 노숙인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박씨는 "(시신이) 겨울용 점퍼 차림에 긴 바지를 입었고 얼룩으로 많이 더럽혀진 흰색 운동화는 가지런히 벗어 발 옆에 놓여 있었다"며 "시신 머리맡에 놓인 천으로 된 장바구니에 빈 소주병과 러닝셔츠, 양말 등이 있었다. 누가 봐도 노숙인 같았다"고 했다.
유씨 시신은 하늘을 바라보며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고 한다. 일부러 누울 자리를 만든 것처럼 시신 주변의 풀 더미도 모두 꺾여 있었다. 박씨는 "얼굴은 풀 더미에 가려 잘 보지 못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체구가 작고 말라 보였다"면서 "흰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없고 배 안의 장기가 다 보일 정도로 시신이 많이 부패돼 있었다"고 말했다.
박씨가 유씨 검거에 걸렸던 역대 최고 현상금 5억원을 받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범인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범인 검거가 아닌 시신 발견인 데다 신고 당시 유씨임을 인식하지 못한 터여서 현상금을 받지 못하거나 보상액이 제한될 수 있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22일 "(유씨라는 사실을) 알고 신고해야 현상금 지급 요건이 되지만 어쨌든 변사체로라도 확인할 수 있게 도움을 줬다. 보상 여부는 심의위원회에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순천=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유병언 시신 확인] 시신 첫 발견 농부 박모씨 “머리카락 빠지고 부패… 노숙인 같았다”
입력 2014-07-23 0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