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1일(현지시간) 말레이시아 여객기 피격 사건과 관련해 국제조사단의 즉각적인 현장 접근과 조사가 보장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안보리는 러시아를 포함한 15개 이사국 만장일치로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피격 원인을 둘러싸고 서방국가들과 러시아 간의 대립이 더욱 격해지면서 진실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양상이다.
◇결의안 문구조차 힘 대결=당초 호주 정부가 기초한 안보리 결의안은 말레이시아 MH-17편 여객기가 '격추됐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국제조사에 선입견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 '추락했다'로 바뀌었다. 또 국제조사단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주도적 역할을 한다는 부분도 러시아가 교체를 요구해 '우크라이나도 조사단에 참여하며,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주도한다'는 것으로 변경됐다.
결의안은 아울러 우크라이나 반군을 비롯한 모든 무장세력은 즉각 군사행동을 중단하고 추락현장과 주변 지역에서 국제조사가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결의안 통과 뒤 서맨사 파워 미국 유엔대사는 "러시아 정부가 반군이 무기를 내려놓고 국제조사단에 현장을 넘겨주도록 하지 않는 한 결의안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면서 러시아의 진정성 있는 협조를 촉구했다.
◇"정부군 소행" 반격 나선 러시아=여객기 격추가 친러시아 반군 소행으로 굳어지면서 궁지에 몰렸던 러시아는 여객기가 우크라이나 정부군에 의해 피격됐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대대적인 역공에 나섰다.
러시아군 총참모부 작전총국 국장인 안드레이 카르타폴로프(중장)는 모스크바 국방부 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여객기 격추 전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한 우크라이나 정부군 전투기 수호이(Su)-25가 근거리에서 여객기를 뒤따라 비행한 사실이 우리 공중 감시망에 포착됐다"며 정부군에 의한 격추 가능성을 지적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보유한 '부크(Buk)-M1' 미사일이 사고 당일 여객기 운항 방향을 따라 집중 배치됐음을 보여주는 위성사진도 공개했다. 그는 "반군엔 전투기가 없는데 우크라이나 정부는 왜 여객기가 추락한 도네츠크주에 방공 미사일을 배치했는지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우크라이나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공군기는 사건 현장 주변을 비행하지 않았고 전부 지상에 있었다"고 반박했다.
◇파편 흔적 사진 공개, 반군들 블랙박스와 시신 인계=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여객기가 미사일에 맞아 피격됐다는 증거라며 최초로 사진을 보도했다. FT가 공개한 사고기 잔해 사진에는 가운데에 큰 구멍이 뚫려 있고 주변에 작은 파편 흔적 수십개가 보인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분석가 더글러스 배리는 "사진은 부크 미사일 시스템에서 흔히 사용되는 종류의 비산형 고폭탄두 폭발에서 볼 수 있는 손상과 일치한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반군은 200여구의 탑승자 시신을 피해국 조사단에 인계했다. 시신은 냉동열차에 실려 우크라이나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 동부 도시 하리코프로 운송됐다. 23일 네덜란드로 운송될 예정이다. 나머지 시신들도 수습이 끝나는 대로 운송될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현재까지 사망자 298명 중 95%인 282구의 시신이 수습됐다고 전했다.
반군은 이날 오전 ICAO에 전달하는 조건으로 말레이시아 조사단에 추락현장에서 수거한 블랙박스를 넘겼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여객기 격추 사고 조사를 위임받은 네덜란드 조사팀이 말레이시아 측으로부터 블랙박스를 전달받아 이를 영국 전문기관에 넘겨 해독하게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말레이시아는 "블랙박스가 온전하다"고 말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말레이 여객기 피격] 서방·러시아 대립 격화… ‘피격 진실’ 미궁 속으로
입력 2014-07-23 03:47 수정 2014-07-23 14: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