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20년 전인 1894년(고종 31년)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특별한 해이다. 그해 1월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고, 7월에는 갑오경장, 그리고 8월에는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간지로는 올해와 같은 갑오(甲午)년이었다. 나라 안팎과 위아래로 민족의 운명이 요동쳤다.
당시 조선 사회는 근대화를 위한 요구가 들끓고 있었다. 1882년에 구식 군대 폐지와 관련해 임오군란이 일어났고, 1884년에는 개혁적인 성향의 관료와 지식인, 청년층의 주도로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청나라와 일본으로 대표되는 외세의 침략에 맞서 국가와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은 명백했다. 1880년대 초부터 1890년대 중반까지 한민족은 근대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개혁의 진통을 겪은 것이다.
21세기 초반의 한국교회도 같은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개혁’이 한국교회에 주어진 시대적 화두라는 점은 분명하다. 곳곳에서 개혁과 변화에 대한 요구가 분출되고 있다. 거시적으로는 전반적인 교세 침체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세대별로 나눠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새로운 과제를 확인할 수 있다.
필자가 속한 교단 통계자료를 보면 다음 세대에 관한 과제를 확인할 수 있다. 전국 8417개 교회 중 고등부가 없는 교회가 48%나 된다. 중등부가 없는 교회가 47%, 아동부의 고학년 부서가 없는 교회가 43%, 저학년 부서가 없는 교회가 47%, 유치부가 없는 교회가 51%, 유아부가 없는 교회가 77.4%, 그리고 영아부가 없는 교회가 78.5%로 나타났다.
대략 절반가량의 교회가 교회학교 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교회학교 교육을 전담하는 교육전도사를 둔 교회는 25%에 불과하다. 교회학교가 있는 교회 중에서 절반가량은 전담 교역자가 없는 것이다.
장년세대의 경우에는 교세의 불균형이 심한 것을 볼 수 있다. 등록 세례교인이 100명 미만인 교회가 66.5%에 달하며, 그 중 50명에 미달하는 교회가 무려 54.4%나 된다. 아마 한국교회 전반을 보면 더 어려울 것은 자명하다. 동반성장과 균형성장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작은 교회와 큰 교회가, 농어촌 교회와 도시 교회가, 미자립 교회와 대형교회가 함께 성장하지 못하면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다. 목회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변화해야 한다.
우리는 현재의 모습 속에서 과거를 보고, 역사에서 미래를 향한 지혜를 얻어야 한다. 민족사를 통해서 근대국가를 향한 개혁을 성취하지 못했을 때 당한 불행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불행하게도 민족 내부에서 분출한 개혁요구를 당시 사회 지배층은 담아내지 못했다. 도리어 정략적으로 이용했다. 심지어 외세에 의존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개혁을 추진한 갑신정변을 주도한 이들은 사상적으로 미숙했다. 대중의 지지기반도 취약했다. 민란을 일으켰던 농민들이나 구식군대도 국가의 변화를 이루는데 미치지 못했다. 결국 청일전쟁과 을미시해를 고비로 증대되는 일본의 침략 앞에 굴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1993년 모 재벌기업의 회장이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한국교회는 ‘개혁’을 시대의 화두로 삼아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와 있다.
변창배 목사 (예장 통합 총회기획국장)
[시온의 소리-변창배] ‘개혁’은 시대의 화두
입력 2014-07-23 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