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가장 든든한 울타리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가족의 품에서 소외된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을 보듬고 더불어 사는 사회적 토양이 절실한 때입니다. 이를 위해 국민일보와 숭실공생복지재단이 '화해와 평화를 위한 공생의 길'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여기, 또 다른 가족이 있습니다'란 슬로건 아래 소외된 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가족의 의미를 되살리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일본어를 너무 잘하셔서 한국 분인 줄 몰랐어요.”
지난 19일 오전 11시 서울 연남동 숭실공생복지재단 2층은 화기애애한 대화로 시끌벅적했다. 한국어와 일본어가 유창하게 오갔다. 부모들이 인사를 나누는 동안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놀이방에서 장난감을 차지하기 바빴다. 숭실공생복지재단이 주선한 한·일 국제결혼 부부 모임 ‘김치와 우메보시(매실절임)’의 첫 행사가 진행되는 날이었다. 우메보시는 일본 사람들에게 김치 같은 전통 음식이다. 한국인 남편과 일본인 부인 또는 일본인 남편과 한국인 부인 8쌍이 모임에 초대됐다.
김치와 우메보시는 숭실공생복지재단의 뿌리인 윤치호(1909∼?) 전도사와 윤학자(다우치 시즈코·1912∼1968) 여사 부부의 뜻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본인인 윤 여사는 전남 목포의 ‘거지대장’으로 불리던 윤치호 전도사와 결혼해 1928년 공생원을 세우고 고아 3000여명을 돌봤다. ‘민족은 달라도 진심은 통한다’는 신념으로 평생을 헌신해 ‘한국 고아의 어머니’라 불렸다. 1963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67년 일본 정부의 남수훈장을 받았다.
행사는 윤 전도사 부부의 삶을 담은 영화 ‘사랑의 묵시록’을 함께 감상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이 영화에 집중하는 동안 부엌은 자원봉사자들의 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함박스테이크, 하야시라이스(하이라이스) 등 일본 가정식 메뉴에 이번 행사를 상징하는 김치와 우메보시가 곁들여졌다. 결혼 후 한국에서 몇 년씩 생활한 일본인 아내와 남편들은 “일본 집에서 먹던 차림과 똑같다”며 반가워했다.
식사를 마친 뒤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영화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결혼한 지 갓 1년이 된 신혼부부부터 결혼 14년차 부부까지 저마다 인연을 맺은 배경과 이야기는 다양했다. 하지만 윤학자 여사의 삶에 대해선 입을 모아 감탄했다.
권혁은(42)씨는 에다 가오리(37)씨와 아버지가 처음 만난 날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권씨는 “가오리를 소개하던 날 아버지가 ‘가오리회’를 사오셨다”며 “벌써 결혼 11년차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양국 문화를 더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 고마운 영화였다”고 말했다. 민성홍(36)씨는 “2007년 아내 다나카와 결혼할 당시 잘해주겠다고 다짐했는데 오늘 영화를 보니 맘먹은 만큼 잘 챙겨주지 못했던 것 같다”고 소감을 밝히자 아내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지기도 했다.
한국 생활 10년째인 게이코(38)씨는 “남편을 만난 게 18년 전인데 영화를 통해 아직까지도 모르는 부분이 참 많다고 느꼈다”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리 한·일 부부들이 양국 관계를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참 좋은 시기에 한국에 와서 살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최근 악화된 양국 관계에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했다. 김종서(46)씨는 이시다(36)씨와 결혼 전 장인어른의 반대가 심해 6개월이나 마음고생을 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청혼할 때 아내에게 지금은 동북아 갈등이 문제가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우리도 유럽처럼 한 나라가 될 것이고 우리 아이들은 그 시대에 중요한 인재가 될 거라고 설득했었다”면서 “아내를 속인 것 같아 걱정”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스스로를 ‘시온이 엄마’라고 소개한 이시다씨는 “남편에게 속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런 모임이 활발해지면 한국 생활이 더 재미있어질 것 같다”며 “앞으로도 자주 모임을 갖자”고 말했다.
이날 모임의 사회를 맡은 숭실공생복지재단 직원 후쿠다(33·여)씨는 “이란 타지키스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지낸 경험이 있지만 문화가 비슷하고 가까운 한국에 유독 정이 갔다. 김치와 우메보시 모임에서 역사 공부와 언어 공부를 병행하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이어지던 첫 모임은 오후 3시가 돼서야 마무리됐다. 이경림 재단 부회장은 “한·일 관계를 넘어선 공생을 통해 조금이라도 서로 도우며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게 우리 재단의 미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록 양국 정부 관계는 어렵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사랑으로 정치를 넘어 살아가는 여러분은 더 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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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평화를 위한 공생의 길-르포] 한·일 국제결혼 부부 모임 김치와 우메보시 첫 행사
입력 2014-07-23 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