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은행 돈 빌려 집 사라는데

입력 2014-07-23 02:23

궁금증은 매일반이다. 정부가 LTV(주택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를 풀어줄 테니 은행돈 빌려 집을 사라고 한다. 과연 그래야 하나. 스스로 묻고 답한다. 현문우답(賢問愚答)이겠지만 즉문즉답(卽問卽答)만큼 이해를 돕는 데 명확한 것은 없다. 정답은 나도 모른다. 다만 갑자기 부동산을 살리겠다고 나선 정부 정책에 대한 서툰 해석일 뿐, 판단은 각자 몫이다.

-은행 대출받아 집 사라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집값이 오를까.

“알 수 없다. 각자가 알아서 하면 된다.”

-무슨 말인가. 정부가 이 정도 세게 나오는 걸 보면 집값이 오른다는 걸 사실상 담보하는 것 아닌가.

“누가 보장할 수 있나. 정부가 ‘신의 한 수’라도 둔다는 말인가.”

-확신도 할 수 없는데 국민들에게 빚을 내 집을 사라는 건 뭔가.

“정부 논리도 나름 일리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집값 하락이 지속된 데다 외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집값이 낮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정부 정책의 초점이 부동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수 활성화를 통한 경제 살리기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 좀 찜찜하다.”

-지금 우리 집값이 외국에 비해 싼 편인가.

“관점에 따라 다르다. 1년 소득을 모두 모았을 때 집을 살 수 있는 기간을 계량화한 PIR(Price to Income Ratio)이라는 지수가 있다. 정부는 서울의 PIR을 7.8로 보는 반면 야당에서는 14라고 한다. 참고로 런던은 6.9, 뉴욕 7.9, 시드니는 8.5이다. ”

-이미 일부 지역에서 오르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데.

“지난 10년간 주택담보대출 증가율과 부동산 가격 상승률의 시차상관계수를 보면 2개월의 차이가 있다. 이는 대출 규제가 완화된 2개월 후 집값이 가장 많이 올랐다는 의미다. 지금도 서울 강남 재건축 등을 중심으로 상승 분위기가 점차 감지된다. 그러나 특정 지역 양상이 향후 전반적인 상승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금융위원회 등 금융 당국은 원래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에 반대했는데 왜 돌아섰나.

“관료의 속성을 모르나. 위에서 방향을 바꾸는데 아래에서 그대로 있을 수 있나. 돌연 표변해야 하니 그쪽도 입장이 난감할 것이다.”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가 가계부채 악화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있는데.

“올 1분기 가계 빚 1024조원 중 주택담보대출은 422조원이다. 문제는 주택담보대출의 상당 부분이 생활비 교육비 등으로 쓰이는 데 있다. 같은 기간 가계부채증가율(6.4%)은 소득증가율(5.3%)을 웃돌았다. 국제적 신용평가기관 S&P가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할 경우 국가신용등급을 내리겠다고 협박하는 것도 가계부채가 은행 부실로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서다.”

-사람들이 왜 집을 사지 않나.

“구매력 약화, 세금 부담, 인구구조 변화 등 외부 요인이 많겠지만 가장 분명한 이유는 앞으로 집값이 오를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학습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2006년말 집값이 급등하자 2007∼2008년 무리한 대출로 집을 사는 사람이 줄을 이었다. 이들은 2010년 이후 집값이 급락하자 대부분 ‘하우스 푸어’로 전락했다. 부동산 투자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겼다. 투자자는 물론 실수요자까지 선뜻 집을 사기 꺼리는 이유다.”

-그래서 결론은 뭔가.

“대출 여력이 많아졌다고 무리하게 돈을 빌려 집을 사는 것은 위험하다. 특히 일부 지역의 반등에 편승해 과다한 대출로 집을 사는 것은 쪽박을 자초한다. 그 순간 하우스 푸어 반열에 들어선다고 확신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참 친절하다. 대출을 많이 받아 집을 살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나 친절 이면에 엄청난 위험이 있을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국민들의 로망인 ‘집’에 대한 염원을 자극하는 정부, 좋은 정부는 아닌 것 같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