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노믹스(일본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가 시동된 지 1년 반이 지났다. 무제한 금융완화, 사상 최대 재정지출,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한 성장이라는 세 가지 전략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과 조지프 스티글리츠도 절찬의 박수를 보냈다. 아베 정책의 최대 브레인이었던 하마다 고이치(浜田宏一) 교수는 세계 곳곳에서 관련 세미나의 상시 출연자이기도 했다.
지난 몇 년간 미국과 유럽도 과감한 양적완화 정책에 보조를 맞췄다. 그러나 일본 정도는 아니었다. 일례로 중앙은행 총자산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10∼2013년 무려 20% 포인트나 증가했다. 유럽중앙은행(ECB)과 미연방준비은행(FRB)이 불과 7∼8% 포인트였던 것에 비하면 압도적인 통화 증발이었다.
일단 성과도 아주 좋아 보인다. 실질 GDP 성장률은 2012년 0.7%에서 2013년 2.3%, 그리고 올해 1분기는 연율 환산 6.7%로 순조롭다. 실업률도 각각 4.3%, 3.9%, 3.6%로 하락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도 0.2%, 0.8%, 1.3%로 디플레이션의 긴 터널에서 벗어났다. 법인기업 영업이윤율도 올 1분기 28.8%로 2011년 이래 최대치를 경신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행복해졌다는 징후는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지난 6월 22일 아사히신문 여론조사를 보면 아베의 경제정책에 의해 고용과 소득이 나아질 거라고 대답한 사람은 27%에 불과했다. 기업의 성과와 개인의 삶이 괴리되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었으며 이번에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올해 춘투(春鬪)에서의 평균임금상승률은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임금인상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2.1%로 지난 4월 소비세 상승률(5%→8%)에도 못 미쳤다. 오히려 물가상승, 사회보험료 인상과 연금 감액, 각종 공공요금 인상 요인을 감안하면 실질 가처분소득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장기적으로 성장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예측 또한 밝지 않다. 40%에 육박하는 법인세를 30%로 줄인다고 투자가 크게 증가될 리도 없다. GDP의 50%에 달하는 220조엔의 기업저축(내부유보금)을 쌓아놓고 있는 일본기업에, 문제는 투자할 ‘돈’이 아니라 투자할 ‘곳’인 것이다. 규제개혁 논의도 이미 1996년 하시모토(橋本) 개혁 이후 충분히 진행됐다는 점에서 그리 새롭지 않다. 이제 남은 것은 농업, 의료, 교육, 안전 등 국민생활의 공공성과 직결되는 규제이며 안이하게 완화할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계속되는 국제수지의 압박이 국채시장에서의 불안정성을 더욱 확대할 것이라는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정부 부채비율이 240%에 육박한 일본에서 국제수지의 불안은 지금까지의 안정적 국채보유자를 투기적 투매자로 돌변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아베노믹스가 직면한 문제는 재정 금융정책의 유용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불황기에 이미 그 효과는 충분히 입증됐다. 지금 증명해야 할 것은 장기적인 성장기반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적극적인 재분배로 인한 수요기반의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아베 총리도 이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듯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업의 수익성 향상이 임금인상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강조와 설득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아베 총리에게 없었던 것은 재분배를 실현시킬 구체적인 수단이었던 셈이다.
한편 최경환 신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2일 경제5단체장과의 조찬간담회에서 “가계소득 증대,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경제계의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취임과 동시에 놀랍게도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방침도 언급했다. 재분배와 투자증대를 위한 유력한 정책수단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크게 환영할 만한 하다. 앞으로 최 부총리가 아베노믹스를 반면교사로 삼아 재분배 정책의 단추를 제대로 끼워나갈 수 있을지 주목할 일이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경제시평-김종걸] 아베노믹스의 교훈
입력 2014-07-23 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