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구석엔 군데군데 흠집이 새겨진 커단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는 책들 사이엔 커단 제니스 라디오가 놓여 있었다. 라디오에선 어떤 방송극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다. 아버지, 동생들이 삥 둘러앉아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무엇인가 접시를 딸그락대며 담고 계셨고…. 아마도 수박 같은 것이었으리라. 시원한 밤바람이 어깨를 씻고 지나갔다. 어머니는 수박을 들고 오셨다.’ 내 어린 시절 어느 날 저녁의 우리 집 대청마루 풍경이다.
또 있다. 대청의 추억은. 어느 날 저녁 대청에 깔아놓은 돗자리 위에 대자로 누워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때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울려왔다. 그리 유려한 소리는 아니었으나 나는 귀를 기울였고, 밤하늘의 별이 떨어져 온다고 생각했다. 그 소리는 영롱했다. 나는 그 소리를 열심히 들었다. 그날 나는 내 생애의 제일 첫 번째 시를 생각하기 시작했고 그 피아노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 얼른 내 방으로 들어가 머릿속의 시를 노트에 옮겨 쓰기 시작했다. 내 속에서 울린 그 무엇과 함께.
대청, 그것은 지금 내게 어떤 바람 지나가는 오아시스 같은 것으로 기억된다. 앞뒤로 문을 다 열어놓으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던, 대들보가 높이 받치고 있어 더욱 시원하던 대청마루, 연속극과 피아노,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
그 시절 한옥엔 대청이 있었고, 대청은 집안의 중심이었다. 에어컨이 필요 없던 시원한 바람의 집, 아마도 고택들을 가보면 그런 대청을 만나리라. 없어진 것이 어디 한둘이랴만, 서양식 거실의 개념과는 비슷하면서도 사뭇 다른 대청, 식구들은 거기에 빙 둘러앉았고 바람은 앞뒤로 불었으며, 어머니는 호박전을 부쳐 오시거나 수박을 썰어 와 한가운데 놓으시던 대청, 거긴 가족의 ‘소통의 장’이었다. 그리고 안방으로 가려 해도, 건넌방으로 가려 해도 거길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네거리의 중심 지점이었다. 바람이 마음대로 통과해 가는 광장.
뜨겁고 답답한 여름, 그런 대청이 그립다. 옛집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 한 집안의 광장과 같은, 어머니가 종종걸음을 치시고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시던 그 공원의, 나무가 닳아서 반질거렸지만 어머니의 걸레질을 받아 한없이 정갈해진 마루의 몸. 그 광장 ‘소통의 성소’를 다시 찾을 수는 없을까. 밀폐된 에어컨 바람이 아닌, 앞뒤가 신바람을 전해주는 그런 대청 말이다.
강은교(시인)
[살며 사랑하며-강은교] 바람의 집
입력 2014-07-23 0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