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현장] 전교생 870여명을 컴패션 후원자로 이끈 부산 브니엘고 종교수업

입력 2014-07-22 03:19
전영헌 부산 브니엘고 교목이 지난 16일 1학년 6반 종교시간에 학생들과 대화하고 있다. 부산=강민석 선임기자
컴패션 후원아동 30명 사진 앞에 선 전 교목.
브니엘고 전교생은 국제어린이양육기구 한국컴패션을 통해 해외 가난한 어린이들을 후원한다. 부산 금정구 체육공원로 브니엘고 전교생 870여명이 자발적으로 후원활동에 나선 데에는 전영헌(44) 교목의 역할이 컸다.


장맛비가 내린 지난 16일 오후 종교수업이 진행 중인 브니엘고 1학년 6반. 교실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는 창밖의 빗소리를 덮을 정도로 왁자지껄했다. 23명의 남학생들은 전 교목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수업 주제는 ‘지금을 기억하라’. 학생들은 전 교목에게 모바일 메신저로 ‘가장 의미 있는 사진’을 보내고 사진을 선정한 이유를 발표했다. 중학교 졸업, 부모 결혼기념일 모습, 길고양이 등 각양각색의 사진과 사연에 학생들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전 교목은 한 학기의 마지막 수업을 이렇게 마쳤다.

“기말고사 끝났지. 고교 첫 방학을 어떻게 맞을래. 기억에 남는 순간은 의지가 있어야 만들어지는 거야. 이번 방학은 땀 흘려 공부하고 봉사해서 각자 자질을 높여보자. 그렇게 공부한 거, 남 주는 사람이 되자.”

수업시간 내내 전 교목은 ‘교회’ ‘전도’ ‘복음’이란 말을 단 한차례도 하지 않았다. 2008년 부임했을 때 ‘기독교 이야기와 교회 가자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고 학생들에게 공언했기 때문이다. 대신 꿈 진로 사명 가정예절 리더십 등에 대해 가르치며 삶의 가치관을 어떻게 세울지 강의했다. 강영훈(16)군은 “선생님은 교회 안 다니는 이들을 고려해 기독교 대신 우리에게 도움 주는 이야기를 해 주신다”며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선생님을 잘 따르고 종교 시간에도 대부분 졸지 않는다”고 했다.

목사인 그가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기를 포기한 이유는 명확하다. 주입식 성경교육 대신 학생들과 소통해 기독교적 가치관을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 교목은 수업시간에 한국컴패션의 설립과정과 활동, 연세대 설립자 언더우드 선교사의 일생, 아프리카 케냐의 빈곤지역 어린이들로 구성된 지라니 합창단 결성 과정 등 나눔을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수업 말미엔 입버릇처럼 ‘5000명분을 홀로 먹는 사람이 아닌 5000명을 먹이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한다. 성경·기독교 교리가 아닌 삶의 태도와 가치관에 대해 말하자 학생들은 그의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전 교목과 종교수업에 흥미를 느낀 학생들은 쉬는 시간이나 자습 시간을 이용해 교목실을 찾았다. 교목실을 소통과 상담의 장으로 삼은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간식거리를 마련해 학생들이 부담 없이 찾아와 삶과 진로를 상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전 교목은 나눔 정신을 말로만 가르치지 않았다. 그는 2011년 ‘5000명을 먹이는 사람’이란 슬로건을 내세워 ‘컴패션 나눔 운동’을 펼쳤다. 전 학급을 돌며 학생들에게 컴패션이 하는 일을 설명하고 개인이 매달 용돈에서 3000원씩 기부해 한 학급 당 빈곤지역 어린이 1명씩을 돕자고 설득했다. 부모들에게도 가정통신문을 보내 참여를 독려했다. 이듬해 전교생이 필리핀 세부의 쓰레기 마을 어린이 30명을 후원하는 기적은 이렇게 탄생했다.

전 교목은 봉사와 관련된 다양한 특색사업도 벌였다. 월드비전의 기아체험, 한국해비타트의 사랑의 집짓기 운동, 기아대책의 사랑의 우물파기 운동을 교내에서 개최했다.

매주 토요일엔 1·2학년을 대상으로 독거노인과 노숙인을 위한 지역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지난 1월엔 컴패션 관계자, 교직원, 학생들과 함께 5박6일간 후원아동이 사는 세부 지역을 다녀왔다.

그는 "처음엔 대학진학에 도움을 주기 위해 컴패션 아동후원을 시작했지만 학생들 가치관이 변하는 걸 보고 점차 다양한 봉사활동 기회를 만들었다"며 "이런 활동들이 제자들의 안목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 학생의 참여, 학부모의 성원으로 나눔교육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역 교회의 참여가 저조한 점이 아쉽다고 했다. 전 교목은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의 장학금이나 방과 후 활동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지역 교회가 학원선교에 더 많은 관심과 후원을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나눔의 체험과 기독교적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심어줄 수 있는 곳이 바로 미션스쿨"이라며 "어려운 이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사람으로 키우는 일에 한국교회가 더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산=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