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서완석] 버킷 리스트보다 중요한 것

입력 2014-07-22 02:38

영화 ‘버킷 리스트’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란 부제를 달고 2008년에 개봉된 미국 영화다. 우연히 같은 병실을 쓰게 된 재벌 사업가 에드워드(잭 니콜슨 분)와 자동차 정비사 카터(모건 프리먼 분)가 여생 동안 자신들이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것들을 실천하기 위해 여행길에 나선다.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카레이싱과 스카이다이빙하기, 눈물날 때까지 웃어보기 등. 이들은 목록을 지워 가기도 하고 더해 가기도 하면서 인생의 환희와 삶의 의미, 감동, 우정 등 많은 것을 서로 나눈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것들

2012년 8월 초 런던올림픽 취재차 가 있던 영국으로 날아든 동생의 암 선고 소식에도 나의 버킷 리스트는 작성되지 않았다. 아니 관심 없었다. 그저 일상이 쫓기듯 바빴고, 바쁠수록 무언가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길들여져 있었던 시절. 나이는 먹지만 바쁜 일상의 결과는 훗날 행복과 기쁨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 후 가까운 직장 동료들이 하나둘 동생처럼 불치병에 걸렸을 때 그 같은 확신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병실에 누운 그들의 모습이 나 자신의 얼굴과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같은 시기 비슷한 일을 하며 청춘을 바친 결과가 불치병이라니. 병상에 누운 자와 지켜보는 자의 차이를 누가 함부로 구분한다는 말인가. 그 기준은 누구의 뜻인가.

결코 짧지 않은 생에서 얻은 경험의 하나는 인생은 러시안 룰렛 게임과 다르지 않다는 것. 의사들은 가족력 운운하지만 일생에서 암에 걸릴 확률 35%를 피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법이다. 또 한 가지는 세상에서 지탄받는 나쁜 사람들보다 착하고 아까운 사람들이 먼저 하늘나라로 간다는 것. 평생 가족들을 위해 일만 열심히 하더라도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빨리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날 수 있는 게 인생이라면 늦기 전에 인생 설계를 다시 해야겠다고 마음먹기에 이르렀다.

그중 하나가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 있다던가.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좀 더 정확한 번역 “정말 오래 버티면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와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좀 더 능동적인 삶을 살라는 지적으로 이해하고 싶다.

버킷 리스트는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채워 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남자의 유일한 액세서리라는 좋은 시계 갖기, 손목에 이름이 새겨진 맞춤 셔츠 입기 등은 약간의 금전을 필요로 했다. 맞춤 구두 신어보기는 목록에 적어뒀다. 이 같은 물질적인 것 외에 영화에서처럼 낯선 사람 도와주기 같은 것도 했다. 봉사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사랑과 배려는 강한 면역체계

하지만 버킷 리스트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다. 버킷 리스트는 불행이 닥치기 전에 그동안 못 다한 욕망을 해소하는 소극적인 방어기제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물질적 정신적 갈구함이 다 채워졌다 해도 또 다른 욕망이 나를 더욱 허기지게 만들었다. 암도 극복할 수 있는 적극적인 삶을 위해서는 다른 그 무엇이 필요했다.

어느 날 TV에서 본 의학자의 강연이 눈을 번쩍 뜨게 했다. 그는 암 예방책으로 자가면역체계 강화를 권했다. 면역체계 강화를 위해 그가 주장하는 것은 좋은 음식과 보약이 아니었다. 뜻밖에도 이웃을 사랑하고 남을 배려하라는 것이었다. 마음에 평화를 갖고 욕심을 버리면 암세포를 죽이는 물질이 생성된다는 것이었다. 버킷 리스트 작성에 앞서 해야 할 그 무엇이 바로 이것이었다.

서완석 체육부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