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일수] 인물 정치의 빈곤

입력 2014-07-22 02:14

박근혜정부 제2기 내각이 우여곡절 끝에 출범했지만 그 여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총리 후보자 두 사람의 연이은 낙마와 현 국무총리체제의 복귀는 빈곤한 인물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 실례이다. 교육부와 문화부 장관 후보자의 낙마도 그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 같은 인물빈곤 국가가 되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혹자는 실제 인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행 인사청문회제도 자체의 문제점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최근 인사 파동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청와대가 내놓은 반향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다른 입장의 사람들은 청와대의 인사 선정과 검증 시스템의 문제라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심지어 대통령의 수첩 인사에 문고리 인사까지 겹쳐 인사 문제마다 꼬인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파동을 겪으면서 최근 청와대는 인사수석비서관제를 신설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인사 철학과 방향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유사한 실패의 위험은 재발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필자는 약 25년 전, 한 신문 칼럼에 동일한 주제의 글을 기고한 적이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그동안 눈부신 경제발전과 정치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물 정치의 빈곤에서 나아진 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노태우정부에서 문민정부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로, 그리고 이명박정부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시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치지도자들의 의식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이다.

새 시대를 열자면 국민들에게 마땅히 보여줄 그 무엇이 필요하다. 늘 통용돼온 방편이 새로운 제도와 새 인물의 등장이다. 세월호 참사로 빚어진 흉흉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은 국가 개조를 내세웠다. 그 가운데는 정부조직개편 같은 비교적 거대한 입법사항도 있지만, 몇 가지 세세한 전문적인 정책대안들도 눈에 띈다. 예컨대 관피아 부조리를 척결하기 위해 이른바 김영란법의 원안을 되살린다는 것 외에 다중인명 피해범죄에 대해서는 100년형이 가해질 수 있도록 하는 형사정책적 대전환의 발상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과제들은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혼란기를 틈타 졸속으로 처리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급박할수록 더욱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기본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위급상황에 임기응변적으로 내놓은 정책들은 대부분 비정상적인 특성을 띠기 때문에 정상상태가 회복되면 그 비정상을 제거해야 한다. 그때 생길 수 있는 시행착오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은 기본원칙을 따라가는 것이다. 비정상을 통해 정상으로 가려는 유혹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결국 비정상의 정상화는 고사하고 비정상의 늪에 갇힐 공산이 크다.

그 다음으로 인물 정치의 유혹이다. 새 인물의 등장은 제도개혁 못지않게 신선한 충격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어느 탁월한 인물을 내세워 국가 개조니 국가 혁신을 위에서 그리고 앞에서 이끌겠다는 착상은 구시대적이다. 인물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밑에서 국민을 바라보고 섬길 인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아겠지만, 그것을 무기삼아 국민 위에 군림할 인물이라면 그것처럼 위험한 역설은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인물 정치는 가부장적 지배 형태를 조장하는 데 일조해 왔다. 그것이 권위주의적 통치 행태를 낳았고, 지연과 학연 등 인맥 중시의 정치문화를 고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동안 쌓아온 민주화의 결실을 훼손하는 아주 오래된 적폐가 이 같은 인물 정치의 의존성이다. 또한 정치적 엘리트들의 우월의식과 기득권을 이어가기 위한 정략이 바로 인물 정치의 빈곤이다. 그것은 오늘의 정치 현실에서 청와대뿐 아니라 여야 모두의 민낯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민의가 자신들보다 현명하며, 무서운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제2기 내각 인사 파동과 7·30재보선을 앞둔 야당의 전략공천 파동을 보면 그렇다.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