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아웃] ‘간판 스타·흥행카드’ 못 지키는 여자축구

입력 2014-07-22 02:25

폭발적인 드리블, 강력한 슈팅 그리고 강한 몸싸움까지….

축구선수로서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습니다. 박은선(28·서울시청·사진)은 한국 여자축구의 ‘보물’입니다. 그러나 한국 여자축구는 그를 지켜 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성별 논란으로 상처만 안겼습니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일까요. 한국 여자축구의 간판스타 박은선이 국내 무대를 떠납니다.

박은선은 러시아 여자프로축구 강호 WFC 로시얀카로 이적합니다. 1990년 창단된 로시얀카는 2000년대 중반 이후 러시아 여자축구의 중심으로 떠오른 신흥 명문 구단입니다. 지난 시즌 4위에 그친 로시얀카는 명예회복을 위해 박은선을 원하고 있습니다.

계약 조건은 파격적입니다. 박은선은 기존의 배에 육박하는 1억원 안팎의 연봉을 보장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가 해외 진출을 결심한 데엔 고액 연봉 외에 다른 이유도 있는 듯합니다. 지난해 여자축구계를 발칵 뒤집은 성별 논란이 바로 그것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박은선은 뛰어난 신체조건(1m80·74㎏)과 탁월한 실력을 갖춰 일찌감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2003년과 2004년 여자월드컵과 아테네올림픽 무대를 밟았습니다. 2005년 8월 동아시아연맹컵에선 한국의 우승을 이끌며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박은선은 지난 시즌 한국여자축구(WK)리그에서 19골을 터뜨리며 약팀이었던 서울시청을 2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자 서울시청을 제외한 WK리그의 6개 구단 감독은 “박은선의 성별검사를 다시 하지 않으면 리그를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구단 이기주의에 눈이 먼 감독들이 스스로 여자축구의 ‘흥행카드’를 버린 셈입니다.

오랜 방황 끝에 2011년 말 서울시청으로 복귀한 박은선은 다시 한 번 상처를 입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월 명백한 성희롱이라며 6개 구단 감독에게 징계를 권고했습니다. 지난 5월 한국여자축구연맹은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징계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박은선은 징계가 늦어져 많이 힘들어했고, 자신의 성을 의심한 감독들과 축구장에서 계속 만날 수밖에 없어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한국 여자축구계는 지소연(23·첼시 레이디스)에 이어 또 한 명의 유럽파를 탄생시켰습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밝지 못합니다. 유능한 선수를 품어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박은선이 러시아에서 성별논란에 시달리지 않고 자신의 꿈을 맘껏 펼치길 기대해 봅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