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은 지옥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서 사람들은 종종 유토피아를 발견한다.” ‘재난 유토피아’라고 하면 뜬금없는 모순어법이라고 하겠지만, 미국 언론인 레베카 솔닛은 재난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 본성과 행동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제시했다. 그는 저서 ‘지옥 속에 세워진 낙원’(국역본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1905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2001년 9·11테러 등 많은 재난 현장의 기록과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재난은 대중이 아니라 평상시에 힘을 가진 엘리트들을 패닉(공황) 상태에 빠뜨린다는 점을 적시했다.
9·11테러 당시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있던 수천명은 아무런 통제 없이도 두 줄로 계단을 내려오며 침착하게 대피했다. 솔닛에 따르면 재난이 닥쳤을 때 가장 큰 위험요소는 오히려 ‘엘리트 패닉’이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당시 도시 전체로 화재가 번진 것은 군대가 방화선을 구축한답시고 많은 건물을 폭파했기 때문이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한 뉴올리언스에서도 연방및 시정부는 시민들을 컨벤션센터에 고립시켜 뉴올리언스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었다.
반면 재난 속 대중은 평상시 잠복해 있던 이타심과 상호부조의 마음이 깨어난다. 솔닛은 ‘정전’이라는 어둠이 오면 사람들이 ‘별’이라는 오래된 천체를 목격하게 된다고 비유한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서로를 돕는 과정에서 잊고 지내던 유토피아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도쿄가 정전됐을 때 전철이 올스톱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집에 못 가신 분들, 우리 집으로 오세요’라는 메시지가 쇄도했다. 2007년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 당시 해안의 기름때를 닦아내던 어민들과 100만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을 보라.
세월호 참사 100일이 다가온다. 여전히 실종자가 남아 있기 때문에 주민들은 희생자 가족 눈치를 보고, 생존자 가족은 유가족 눈치를, 유가족은 실종자 가족 눈치를 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자원봉사의 물결과 연대의 몸짓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진도주민 가운데는 사고 직후부터 박카스와 우황청심원을 희생자 가족들에게 제공해 온 약사 등 장기 봉사자들이 많다. 지금까지 350만여명이 참가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 현장에서는 서로 모르는 유가족을 꼭 껴안아주는 광경도 드물지 않다. 유가족들이 재난 유토피아를 이룩하도록 온 국민이 돕는다면 국가의 희망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한마당-임항] 재난 유토피아
입력 2014-07-22 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