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말레이 여객기 피격] 분리된 시신들 곳곳에 흩어진 채 방치

입력 2014-07-21 03:04
1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소도시 토레즈 인근 들판. 옥수수와 해바라기, 밀 등이 가지런히 심어져 평화롭기만 했던 시골 들판은 산산조각이 난 여객기 동체 파편과 검게 타버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들, 여기저기 나뒹구는 옷가지, 여행 소품 등으로 쑥대밭이 돼 있었다.

말레이시아항공 MH-17편 추락 현장은 동체가 다 부서지고 불에 타 비행기 형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날개 파편만이 밀밭에 처박혀 있었다.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나도록 방치된 시신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온전한 시신은 없고 신체가 다 분리돼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부패가 시작되면서 현장은 매캐한 냄새로 숨을 제대로 쉴 수조차 없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텔레그래프를 비롯한 영국 언론은 현장을 통제하는 반군이 탑승객 시신 일부를 다른 곳으로 옮겼으며, 유품과 증거들을 빼돌리거나 파괴한 의혹이 있다고 현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친정부 성향의 콘스탄틴 바토츠키 도네츠크주 자치의회 의장은 “밤중에 반군이 희생자 시신 37구를 따로 빼내 도네츠크의 한 검시 시설로 운반했다”고 말했다. 그는 반군들이 희생자의 유류품을 훔치고 현장에서 불리한 증거를 훼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도 이어졌다. 외신들은 “여객기 추락 현장에서 총성과 포성이 계속 들리고 있다”고 했다. 현지 주민도 “정부군이 사건 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사우르-마길라 지역에 포격을 가해 적잖은 사상자가 생겼다”고 말했다. 시신 수습까지 늦어지면서 희생자 당사국은 분통을 터뜨렸다. 27명의 희생자를 낸 호주의 토니 애벗 총리는 “현장이 거의 엉망”이라면서 “도대체 현장에서 책임을 지고 행동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국제적인 여론이 악화되자 우크라이나 정부와 반군은 20일 희생자 시신을 수거하기로 합의했다. 블라디미르 그로이스만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현장을 장악한 반군과 희생자 시신을 수습해 옮기기로 합의를 이뤘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신을 옮길 구체적인 장소는 밝히지 않았다.

이와 관련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철도 관계자를 인용해 희생자 시신을 실은 냉동열차 5량이 토레즈 역을 출발해 주도인 서북쪽의 도네츠크 방향으로 출발했다고 보도했다. 열차 출발에 앞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조사단원이 열차를 검사해 198구의 시신이 실린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전체 사망자는 298명으로 운송은 친러 반군이 통제해 이뤄졌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